[Culture Interview] 축제기획자 엔젤라 권 “도시 전체가 무대인 에든버러는 꿈의 공간”
[Culture Interview] 축제기획자 엔젤라 권 “도시 전체가 무대인 에든버러는 꿈의 공간”
  • 이은영ㆍ진보연 기자
  • 승인 2024.05.0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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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시작된 ‘코리안 시즌’, 다양한 장르 작품으로 ‘우리 문화’ 알리다
“‘연극’ 작품 언어적 장벽 극복, 여전히 어려운 숙제”
공연 멈춘 ‘코로나’ 위기, 축제 경험 엮은 『페스티벌 피플』 출간으로 해소
“아시아 대표 공연예술 축제, 한국 도시에 유치하는 것이 꿈이자 목표”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매년 8월이 되면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로 변한다. 세계 최대 공연 축제인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여름을 알리면, 인구 50만의 작은 도시는 수백만 명의 관광객으로 도시 전체가 북적인다. 발 닿는 모든 곳은 극장이 되고 눈길이 스치는 모든 곳에 꿈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전세계 63개국에서 온 3,800개의 공연팀과 60,000명이 넘는 아티스트들이 300여 개의 공연장에서 총 52,000회에 달하는 공연을 선보이며 기네스북에 기록된 유례없는 규모의 공연예술축제이다. 축제 기간 동안 ‘공연예술축제(프린지ㆍ인터내셔널)', '밀리터리 타투', '북 페스티벌', '아트 페스티벌', '필름 페스티벌', 'TV페스티벌', '재즈 앤 블루스 페스티벌' 등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도시를 가득 메우고, 72개국에서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다채롭고 풍부한 문화예술을 제공한다.

▲에든버러 축제 거리, 로열마일
▲에든버러 축제 거리, 로열마일 ⓒ엔젤라 권

특히,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에든버러를 세계적인 축제의 도시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1947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축제가 처음 열렸을 때 초청받지 못한 작은 단체들이 ‘프린지’(Fringe·주변부)에서 자생적으로 공연한 데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의 이름이 제대로 각인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고 있는 ‘난타’가 이 축제에서 성공적인 국제 무대 데뷔를 치렀고, 이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를 비롯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8년 ‘난타’ 연출에 참여했던 공연기획자 엔젤라 권은 이듬해 이 작품이 해외에 진출하게 되면서 처음 에든버러와 연을 맺게 됐다. 1999년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의 1200여 개 공연 중 대한민국 작품은 ‘난타’가 유일했다. 이후 매년 페스티벌에 참가하던 그는,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해 존재감 없이 공연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공연팀들이 안타까워 2015년 ‘코리안 시즌’을 기획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은 K-컬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날이 갈수록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엔젤라 권이 함께했다. 엔젤라 권은 단순히 티켓을 잘 파는 공연을 올리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역량과 다양성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25년 동안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South Korea’라는 나라를 꾸준히 알리고 있다. 2015년부터 ‘코리안 시즌’을 기획해 이끌고 있는 그에게 ‘공연예술’과 ‘축제’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코리안 시즌 2024’에 참여할 작품들이 발표된 4월의 어느 날, 공연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엔젤라 권을 만나 인터미션 없는 공연처럼 빈틈없지만 짧게 느껴지는 대화를 나눴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코리안 시즌을 총괄하며 우리 문화를 알리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소명을 가져야 할 수 있는 일인데, 지금까지의 소회를 종합적으로 전한다면.

우리나라가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처음 참가한 건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9년이다. 축제가 처음 개최된 해가 1947년이니 꽤 늦게 합류한 셈이다. 민간 프로덕션이 만든 작품으로 세계 시장을 두드려 보겠다는 송승환 대표님의 큰 결심이 있었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공연예술 시장에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누군가 물꼬를 터줬기 때문에 이후의 도전들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 갔을 땐 에든버러가 정말 신세계 같았다.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지만, 그마저도 엄청나게 느껴졌다. 

1999년 50개국이 채 안 되는 나라의 1,200개 공연이 참가했던 축제는 매년 성장을 거듭해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는 전 세계 63개국 3,841개 공연팀이 8월 한 달간 59,600회의 공연을 상연하며 기네스북 기록을 다시 한번 갱신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는 축제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도시는 포화 상태였으나, 이후에도 축제는 꾸준히 성장을 이어갔다.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는 인구수 50만 명의 소도시지만, 매년 여름이 되면이 축제 도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무대로 변신한다. 시내 곳곳에 위치한 극장과 공연장은 물론이고, 호텔과 의회 회관, 교회, 대학교, 펍, 레스토랑, 창고까지 일상의 모든 공간이 공연장으로 변하는 마법이 일어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도시 전체에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가 경이로웠다. 에든버러는 여전히 나에게 꿈이 현실이 되는 공간이다. 

▲2015년 8.15 광복절,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코리안시즌에 참가한 공연팀이 로열마일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엔젤라 권
▲2015년 8.15 광복절,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코리안시즌에 참가한 공연팀이 로열마일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엔젤라 권

올해 8회를 맞이한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의 ‘코리안 시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1999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명망있는 공연장 파트너인 ‘어셈블리 페스티벌’과 잘 맺어온 관계 덕분에 우리는 한 해에 1~3개의 작품을 어셈블리 공연장에 올릴 수 있었다. 축제에 참가한 첫 해에 브로드웨이 매니지먼트사에게 에든버러와 축제 시장에 대한 가이드와 실무경험을 접했기에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이후 어셈블리에 한국 공연을 올린 십여년간, 나는 한국에서 ‘난타’의 성공 신화를 듣고 세계화를 꿈꾸며 에든버러의 문을 두드리는 다수의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중, 축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사전에 에든버러에 와서 전체적인 프로세스와 전략을 파악한 후에 작품을 런칭하는 프로덕션은 많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8월 축제 기간동안 매년 100개 정도의 공연을 봐 왔다. 한 달간 부지런히 봐도 놓치는 공연이 3,700개다. 큰 비용을 들여 어렵게 도전하는 한국의 프로덕션이 먼 타국 축제의 이름없는 공연장에서 이름없이 공연하다 돌아가는 걸 보는 건 힘든 일이었다. 어셈블리는 23개의 공연장을 운영하며 200여개의 작품을 선정하여 프로그래밍한다. 어셈블리에서 공연한다고 모든 공연이 성공 신화를 쓰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출발선이 다르다. 축제의 상징과 같은 어셈블리는 이후 플레즌스 공연장과 함께 Top 2를 결성했고, 언더밸리, 길디드볼룬과 연합을 맺으며 빅 4 공연장을 탄생시켰다. 

어셈블리의 ‘시즌’ 공연은 국가를 지정해 해당 국가의 문화를 밀도 있게 선보이는 특별한 행사이며, 2012년부터 3년간 ‘사우스 아프리칸 시즌’이 운영됐다. 2012년 8월, 나는 나의 친구이자 멘토인 어셈블리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윌리엄 버뎃-쿠츠(이하 윌리엄)와의 식사 자리에서 “왜 나한테 시즌을 하자고 안 했어?”라고 툭 던지듯 이야기를 꺼냈다. 윌리엄은 가볍게 웃으며 “엔젤라, 네가 하자고 안했잖아.” 라고 대답했고, 그렇게 ‘코리안 시즌’이 시작됐다. 그간 느꼈던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장르별로 알리고 싶다는 욕심이 ‘코리안 시즌’의 시작이었다. 전체 축제 참가 공연팀의 1%도 되지 않는 한국 공연이기에 더욱더 공연장의 명성을 등에 업고 조금 나은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길 바랬다.

문화를 밀도있게 선보인다는 말은 대중성과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으며, 저조한 티켓 세일과 회수가 어려운 투자라는 이미지가 그려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안 시즌은 한국의 공연예술이 조금은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 세계의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랬다. 큐레이팅된 작품을 선보이며 일방적인 편견을 불식시키는 노력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다채롭고 우수한 한국의 공연예술로 평가받고자 했다.

선정 기준과 작품이 영국 관객들에게 소개되는 과정도 궁금하다.

선정 과정을 설명드리면, 전해 11월에 공고를 내고 12월까지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의 시간 여유를 두고 지원을 받는다. 지원작이 모두 같은 시기에 공연되는 것이 아니기에, 심사는 공연의 전막 영상으로 대체한다. 1차로 장르별 3배수를 선정하며, 15~20개 내외의 작품이 선정된다. 이후, 영국 심사위원들과 3주에서 한 달 정도의 협의를 거친다. 예술적 가치와 작품성,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 등 다양한 시각으로 분야별 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최종 선정된 작품을 1월 말에 발표하고, 축제 공식 등록 전까지 선정 공연팀과 소통하며 전략을 구체화하는 컨설팅을 이어간다. 작품의 제목과 메인 이미지, 소개 글,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등을 구체화하거나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며 현지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이어 나간다. 8월 축제 기간을 포함한 7개월간의 컨설팅과 현지 운영을 위한 준비와 실행이 뒤따른다. 

올해는 정선 아리랑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뮤지컬 퍼포먼스 ‘아리아라리(ARI: The Spirit of Korea)’와 사랑과 기술의 경계를 탐구하는 창작뮤지컬 ‘유앤잇(You&It)’, 기후 위기와 인간의 존재를 몸짓으로 표현한 한국창작무용 ‘침묵(Sleeper)’, 그리고 시대의 아픔을 섬세하게 담아낸 연극 ‘흑백다방(Black and White Tearoom)’이 선정됐다.

에든버러 축제에 참가하는 예산을 크게 3개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항공과 숙박, 두 번째가 한 달 동안의 공연장 대관과 조명ㆍ음향 등 기술 사용 부분, 세 번째가 홍보 마케팅이다. 코리안 시즌 이전까지는 이 모든 예산을 프로덕션이 부담해 왔다. 이 같은 높은 예산은 2015년 코리안 시즌을 시작하며 고민이 가장 깊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코리안 시즌의 선정팀도 항공, 숙박 등을 프로덕션에서 책임져야 한다. 두 번째 항목은 어셈블리와의 협약으로 축제가 끝난 후 판매된 티켓에서 정산하게 되므로 부담을 낮췄다. 세 번째 항목인 홍보마케팅은 코리안 시즌을 주최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 글로벌문화교류위원회가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항공료와 숙박비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기관과 지자체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며, 상호협력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엔젤라 권 축제기획자
▲엔젤라 권 축제기획자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일을 민간 비영리 단체에서 모두 감당하기엔 어려운 지점들이 많을 텐데,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사업이 아닌가.

문화예술을 알리는 일이 국가만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해외에서 우리 문화 콘텐츠가 성공한 사례들을 보면, 민간에서 각자의 역량으로 그들을 알린 후 국가에서 후속적으로 지원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각각의 장르에 대해 전체적으로 (국가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초반 지원만으로 성장이 어려운 분야라도 우리가 보존해 나갈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장기적인 지원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국제 교류에 기반한 공연예술 분야의 경우는 더욱 중장기적인 계획과 지원이 필요하다. 부가가치가 있어야만 산업이 아니다. 매출, 수익 혹은 결과보다 그 이상의 문화적 가치가 고려돼야 한다. 

우리나라 회계연도가 1년 단위라 지원 사업도 1년 단위가 대다수다. 최근 다년간 사업들도 나오고 있긴 하지만 현저히 부족하다 판단된다. 국제 교류 프로젝트가 활성화되고 지속가능하기를 바란다면 2~4년의 중장기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의 문화적 입지와 해외 네트워킹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정부인만큼, 그에 부합하는 행정 계획을 세워주길 희망한다. 한국과 작업하고 싶어 하는 해외 기관 및 단체가 정말 많다. 함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안정적이며 지속가능한 계획을 세워나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페스티벌 프린지, 밀러터리 타투가 각각 다른 조직으로 운영된다고 하는데.

그렇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로열 밀리터리 타투,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 에든버러 아트 페스티벌, 재즈 앤 블루스 페스티벌, 인터내셔널 필름 페스티벌, 인터내셔널 챌드런스 페스티벌 등 모두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다.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는 에든버러성에서 각 나라의 군악대가 군무와 군악 퍼레이드를 펼치는 축제 행사다. 축제 동안 매일 밤 열리는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입장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는 이벤트다.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1947년 함께 출발했다. 그 중 프린지(Fringe)는 변방, 주변, 비주류 등의 의미 그대로 주최 측의 공식 초청을 받지 못한 단체들이 관객들을 대상으로 주변에서 공연을 선보인 것에서 시작됐다. 

탄생 배경과 축제의 메인 거리인 로열마일의 이미지 때문인지, 프린지를 야외 공연예술축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아직 있는 것 같다. 매년 축제에 참가하는 3,800여개의 공연은 360개의 실내 공연장에서 한 달간 상연되며, 축제 등록을 거쳐 티켓을 판매한다. 공연의 아티스트와 스텝들은 자신들의 공연을 알리기 위해 로열마일에서 공연의 일부인 하이라이트를 선보이거나 리플렛을 배포하며 홍보를 이어 나간다. 물론, 로열마일에는 실내 공연을 하지 않고 버스킹만을 위해 참여하는 아티스트도 많다. 이들은 매일 아침 축제로부터 랜덤하게 공연할 수 있는 시간과 야외의 장소를 지정받는다.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축제가 큐레이팅한 초청 공연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며, 한정된 메인 공연장에서 상연되기에 각각의 공연 회차가 적은 편이다. 공연은 주로 킹스씨어터, 어셔홀, 페스티벌씨어터, 퀸스홀, 플레이하우스 등에서 상연된다.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등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축제위원장 쇼나 맥케시와 엔젤라 권이 <서울아츠어워즈 with 코리안 시즌> 협의를 하고 있다.(2023) ⓒ엔젤라 권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축제위원장 쇼나 맥케시와 엔젤라 권이 <서울아츠어워즈 with 코리안 시즌> 협의를 하고 있다.(2023) ⓒ엔젤라 권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전 세계 최고의 공연&아트 페스티벌로 꼽힌다. 이 축제의 성공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내가 경험한 길지 않은 20여년 동안에도, 전 세계 많은 도시가 에든버러 페스티벌과 같은 축제를 기획하며 벤치마킹하기 위해 에든버러를 찾아왔다. 수많은 도시에 프린지라는 타이틀을 걸고(혹은 다른 이름으로) 유사한 성격의 페스티벌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제2, 제3의 에든버러 프린지를 꿈꾸며 축제 도시를 재현하려 노력하지만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전 세계의 아티스트와 프로덕션이 매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공연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거기에 오기 때문이다.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는 아츠마켓으로 기능하고 있다. 공연을 보고 부킹하는(판매되는) 첫 번째 기능을 포함하여, 공연 콘텐츠와 공연예술인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수요와 공급이 맞기 때문에 일어나는 선순환이다. 

더불어, 걸어 다닐 수 있는 소도시라는 지역적 특성 또한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관광적 매력도가 있어야 일반 관객이 유입될 수 있다. 에든버러는 신도시와 구도시로 나뉘어 있지만, 신도시 자체도 2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렇다 보니 도시 전체가 르네상스 시대 유물이 넘쳐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공연예술축제를 진행한다고 해서 하루 종일 공연만 볼 수는 없다. 먹고 마시고 도시를 향유하며 축제의 바이브를 즐긴다. 도보로 이동 가능한 범위 내에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면 축제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2016년 아시아를 대표하는 공연예술 축제를 한국에 만들고자 현실적인 기획을 진행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자체적으로 생산되는 콘텐츠가 풍부하다. 이에 더해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양질의 콘텐츠를 담아 대륙을 대표하는 축제로 키우기에 한국보다 적합한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양질의 콘텐츠가 확보되면 이를 찾는 수요자가 찾아온다. 신뢰할 수 있는 수요자가 찾는 축제에는 더 많은 콘텐츠가 모여든다. 수요와 공급이 맞으면 아츠마켓 기능을 담은 축제는 스스로 성장한다. 

가장 염두에 둔 곳은 부산 해운대였다. 관광 매력도가 높으며,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로 국제 행사의 입지를 다졌으며, 공연예술, 시각예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축제를 담고 있는 축제도시 에든버러와 같이, 축제의 분야를 확장하기에도 안정적인 환경을 갖추고 있다. 또한 10년, 20년, 30년 성장하는 축제를 상상하며 바라봐도 지역적 확장성이 좋은 곳이다. 기획 당시의 국가적 상황으로 인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에 아시아 공연예술의 허브 역할을 하는 페스티벌을 꼭 만들고 싶다.

국내에서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존재감은 뚜렷하지만, 이 축제의 구성과 진행 방식, 만드는 사람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서 지난해 출간된 <페스티벌 피플>이 더 흥미로웠다. 책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오게 됐나.

지난 2010년, 한 출판사로부터 축제 관련 책 집필 의뢰를 받은 적이 있었다. 운이 좋게도 에든버러 축제를 포함해 80개국 300개 이상의 도시를 다니며 다양한 페스티벌과 공연을 경험했던 터라, 이를 기반으로 대륙별ㆍ나라별 축제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책을 쓰고자 했다. 목차까지 잡아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후 바쁘다는 이유로 더 이상 진도를 내지 못했고 10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코로나라는 변수가 생기기 전까지 2020년은 그 어느 해보다 빽빽하게 일정이 가득 차 있었다. 뮤지컬 신작의 일본 투어 공연, 해외 프로모션 작품의 네덜란드 26개 도시 투어, 호주 애들레이드 페스티벌 심사 초청, 이집트, 튀니지, 캐나다 등의 초청 공연과 제6회 에든버러 코리안 시즌 준비와 실행까지 한 해가 꽉 차 있었다. 모두에게 그러하듯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코로나는 모든 스케줄을 그저 연기하고 대기하게 만들었으며, 불안과 허망함의 수개월이 지나고 7월이 되자 일정표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취소라는 단어로 가득 채워진 캘린더를 들여다 보다, 매년 전 세계 친구들과 만나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던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축제의 친구들, 페스티벌 피플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갑자기 생긴 기약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며 미뤄둔 일들을 담은 폴더를 열었다. 그곳에 10년 전 만들었던 책의 목차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10년의 시간은 이 모든 축제 정보가 구글 검색으로 알 수 있게 만들었으며, 당시 흥미롭게 여겼던 현장에서의 에피소드 또한 그 기억과 감정이 희미해져 있었다. 축제 책에 대한 기획은 그 방향을 틀어 가장 오랜 기간 함께 해 온 마법같은 축제도시 에든버러와 축제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삶을 나눈 이야기로 채워졌다. 축제에서 해 온 일을 설명하고자 만든 책은 아니지만, 함께 일해 온 축제 사람들과의 현장감있는 에피소드들은 에든버러 축제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BBC ‘The Afternoon Show with Grant Stott’ 애프터눈쇼 위드 그란트 스톳 2018
▲BBC ‘The Afternoon Show with Grant Stott’ 애프터눈쇼 위드 그란트 스톳(2018)

책에서 언급된 바 있지만, 퍼포먼스, 무용, 음악, 전통 공연 등 비언어적 장르에서 뮤지컬과 연극까지 점차 장르가 확장되고 있다. 뮤지컬과 연극은 비교적 늦게 시장에 진입했는데, 언어적ㆍ문화적 간극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있으며 우리나라만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어의 장벽이 정말 높다. 나부터도 타 언어권 작품을 관람할 땐, 자막의 위치와 상관없이 무대 위의 액팅과 전개를 놓치고 텍스트 읽기 바쁘다. 내가 글을 읽으러 왔는지 공연을 보러 왔는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자막을 포기하고 무대에 온전히 집중해 공연을 관람하는 것 또한 어렵다. 단순한 예측으로 공연을 따라갈 수는 없다.

해외에서 한국의 공연예술, 특히 연극이 온전히 이해되지 못한 채 판단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코리안 시즌’ 초반 3년간은 연극 장르를 선정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7년 ‘흑색다방’이라는 작품에서 연락이 왔다. 작품의 메시지도 좋았지만, 배우의 연기와 몰입도가 굉장히 높은 작품으로 텍스트가 가진 힘이 워낙 강했다. 고민이 깊었지만 꼭 무대에 올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떠올린 묘안이 한국ㆍ영국 배우 더블 캐스팅이었다. 리딩 공연을 거치며 영국 배우들이 살아있는 언어로 스크립트를 수정해 나갔고, 작품은 더욱 탄탄해졌다. 한국 배우 공연 한 번, 영국 배우 공연 한 번. 이렇게 홀짝홀짝으로 한 달간 공연을 올렸다. 초반엔 영국 배우의 티켓이 먼저 팔렸다. 이후 오리지널 캐스트의 무대가 궁금해진 관객들이 한국 배우들의 공연을 보러 오기 시작했다. 반응이 정말 좋았고, 기립 박수가 나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2인극이라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배우가 출연하는 중극장, 대극장 작품은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자막의 전달력은 한계가 명확하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다가 자막의 중요한 단어를 하나만 놓쳐도 작품은 이해하기 힘든 방향으로 흘러간다. 최근 한 업체로부터 4D 영화처럼 안경을 끼면 자막을 함께 볼 수 있는 제품을 사용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도수있는 안경을 쓴 사람은 사용할 수 없는 등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대안이 되기 힘들다. 우리만의 고민은 아닌 것 같다. 

PMC에 입사해서 ‘난타’를 만나기 전까지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공연기획자로 활동하는 본인의 모습을 꿈꿔본 적이 있나. 처음 공연계에 발을 들였을 때의 꿈과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사전에 계획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이텔에 떠있는 연출부 구인 공고를 보고 찾아갔을 뿐, 회사의 비전도 계획도 알지 못했다. 들어가 보니 민간 공연 제작사가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런 목표를 가진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 지금은 에든버러 전문가가 되어 있다. 멋진 기회이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엔 해외에 나가면 ‘한국에서 공연하러 온 거 처음 봐’, ‘한국에서 제작도 해?’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대다수가 아시아를 얘기하면 일본 혹은 중국 얘기를 꺼냈고, 한국이라고 하면 북한이냐고 되묻던 때였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문화를 어떻게 알려야 하고, 이걸 어떻게 포장해서 브랜드화하면 좋을 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우리가 처음이었기에 참고할 만한 케이스도 없었고, 상황과 당면한 이슈가 모든 순간 처음이었다. 잠을 줄여 일해야 했고 힘들었지만, 당시의 경험 하나하나가 축적되어 공연 기획 및 제작, 해외프로모션, 축제 기획 및 운영, 공연장 설계 및 운영 컨설팅 등 다양한 일을 하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

▲윌리엄 버뎃 쿠츠 에든버러 어셈블리 극장장 겸 페스티벌 예술감독에게 『페스티벌 피플』을 전달하는 엔젤라 권
▲윌리엄 버뎃 쿠츠 에든버러 어셈블리 극장장 겸 페스티벌 예술감독에게 『페스티벌 피플』을 전달하는 엔젤라 권

책에서 여러 흥미로운 일화들을 통해 그간의 우여곡절을 전했는데, 우리 공연예술의 다양성을 세계에 알리게 된 과정 중에 실패의 경험도 많았을 것 같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공연하는 사람들에게 희비가 극명하게 나뉘는 공간이다. 어떤 공연은 순식간에 표가 매진되는 반면, 어떤 공연은 관객이 한 명도 없을 수 있다. 특히, 장르별로 공연을 올리다 보니 관객들이 좋아하는 장르와 그렇지 못한 장르가 매년 더욱 더 극명하게 나뉘는 걸 체감하게 된다. 캬바레&버라이어티, 피지컬 씨어터, 아트 써커스 등 엔터테인 요소가 있는 작품들은 빠르게 매진되며, 순수예술 장르의 관객은 일부 마니아층의 수요만 남아 있다. 그마저도 점점 (관람층이) 얕아지고 있는 것 같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 공연이 있고, 흥행과 별개로 작품성이 뛰어난 공연이 있다. 두 가지 요소가 맞물려 대중적 성공도 이루고 평단의 호평도 받으면 좋겠지만, 조금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그걸 실패라고 얘기하고 싶진 않다. 

그동안 나이 듦에 대해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는데, 50이라는 숫자와 함께 생각이 많아졌다. 이미 반세기를 살았다는 느낌이 새롭기도 하고,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아직 내 앞에 남아있다는 생각에 먹먹해지기도 한다. 끝이 정해지지 않은 예측불가능의 미래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십여년전 충정로에서 공연장을 운영하다 폐업을 결정하던 시기엔 모든 걸 손에서 놓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30대 후반이라는 나이는 포기보다는 재기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젊은 나이였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모든 힘든 일이 한꺼번에 닥친 그 시기에 친구의 연락을 받고 간 에든버러에서 또다시 운명처럼 ‘축제 기획자’라는 새로운 시작을 만났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 힘들고 슬픈 시기도 있었지만, 한 챕터가 끝나면 다음 챕터가 열리듯이 늘 새로운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코리안 시즌’을 운영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지인들에게는 ‘내가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안 할 거야’라고 얘기한다. 그 말은 역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끝까지 해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엔젤라 권이 생각하는 축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지금 인터뷰하는 카페 안만 둘러봐도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생김새부터 성격, 말투 등 모든 것이 다르다. 이 다양성은 세상이 풍요로울 수 밖에 없는 원천 소스다. 다름을 배척하는 문화를 다양성으로 포용하는 문화로 바꿔나가야 한다. 우리는 삶 안에 당면한 사회 문제나, 환경 오염, 기후 변화, 인종, 미래에 대한 걱정 등 셀 수 없는 이슈로 고민한다. 이 생각의 범위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축제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민하던 다수가 한 자리에 모여 이해와 공감을 높이는 시간을 선물한다. 우리의 삶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생각해 보자고 손 내민다. 

나는 축제를 매개로 이야기하지만, 사실 이는 축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학, 시각예술 등 문화예술 전반 혹은 타 산업도 같은 맥락의 본질을 말할 것이다. 축제에는 다양한 문화가 모인다. 다양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되지 않는 곳이다.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을 담아 이해하고 공감하고 화합하는 길을 찾아가는 곳이라 생각한다. 생각의 기본 단위가 이미지라고 한다. 내 안에서 ‘축제’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사람’이다. 

▲뮤지엄 애프터 아워, 내셔널 뮤지엄 오브 스코틀랜드 미팅(2019)
▲뮤지엄 애프터 아워, 내셔널 뮤지엄 오브 스코틀랜드 미팅(2019)

앞으로의 꿈 혹은 목표는 무엇인가.

15년 정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시아 대륙을 대표하는 축제가 한국에서 꽃피웠으면 좋겠다. 축제의 이름과 방향성이 바뀌지 않고 10년, 30년, 50년, 70년 지속되어 세계적인 축제로 각인되길 바란다.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축제이자, 많은 이에게 가능성을 제시하고, 상상도 못한 기회들이 가득한 축제로 키워갈 수 있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끝으로, 에든버러 페스티벌 참가를 준비하는 분들과 페스티벌을 즐기려고 하는 분들을 위한 팁이 있다면.

에든버러에 참가하려고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참가 전 축제에 꼭 한 번 와보셨으면 좋겠다. 와서 어떤 공연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시장 조사를 하면 좋을 것 같다. 짧게 잡아도 한해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축제의 초기 등록은 2월에 시작되며, 최종 마감도 4월 초이다. 티켓 판매가 4개월 넘게 이뤄진다. 우수한 공연이어야 한다는 건 디폴드 값이며, 온/오프라인 홍보마케팅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홍보 수단인 SNS를 활용하여, 다양한 언어로 친절한 설명과 매력적인 이미지, 동영상 등을 전략적으로 담아내며, 적어도 4개월 이상 공격적으로 운영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코리안 시즌’ 선정팀에게는 상세한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며 전체 프로세스를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매년 코리안 시즌에 선정할 수 있는 공연은 5작품 내외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분들에게는, 4월에 이미 축제에 대한 정보들이 오픈되어 있으니 축제 홈페이지에서 국가별ㆍ장르별 공연을 검색하고 계획을 세우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검색 필터를 활용해 개인별 관심있는 공연을 1차 리스트업했다면, 7월 말부터 나오는 축제 매거진의 프리뷰 기사와 축제기간에 쏟아져 나오는 리뷰들을 참고하여 최종 리스트를 만들면 좋을 것이다. 에든버러는 축제 이외에도 즐길거리가 정말 많다. 셜록 홈즈의 탄생지이자 해리 포터의 성지순례 코스이며, 우리를 힘들게 한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가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웃음)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매력을 지닌 도시이니, 골목골목을 누비며 마법같은 도시를 최대한 즐기고 가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