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우리 시대의 공예, 빼앗기고 잊혀지는 장인들
[기획] 우리 시대의 공예, 빼앗기고 잊혀지는 장인들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5.0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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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 장인들, 생계 유지하기도 힘들어
전승 어려운 상황…사라져가는 무형문화재들
“요즈음 도공은 자기 발로 한국을 떠난다”
일본처럼 전통 보존 중인 공예촌 전무한 상황
“또다시 일본에 우리 문화 뺏기는 일 없어야해”
전통공예 교육의 필요성…정체성 지켜내야
잊혀진 장인정신은 이 시대에 필요한 ‘느린 가치’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기술(technology)의 시대, 기술(skill)은 과거의 영광을 잃었다. 다재다능한 ‘폴리매스(Polymath)’가 더욱 주목 받는 가치이자, 현대인들의 지향점인 요즘, 한 우물만 진득하게 파온 ‘장인정신’은 잊혀지고, 장인들은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시대의 장인(匠人)은 이제 일상이 아닌 판타지 작품 속에서나 등장하는 신비로운 소재로만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옻칠 만년필 브랜드 Namiki 사의 마끼에 장인이 칠을 하는 모습. 숭고한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잊혀지는 것들

도구의 역사는 빙하기부터 시작된다. 인류의 역사가 변화를 거치는 만큼 수많은 도구가 소멸하고 새로운 문물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현대인들은 효율성을 위해 분업과 ‘노동 소외’를 선택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인은 정부의 보조 없이 시장 경제 내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하기 힘들어졌다. 타자기와 전자기기의 등장으로 오늘날의 만년필은 실용(實用)보다는 장식이나 조형으로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한때 일상적인 공예품이었던 홍두깨, 물레, 초롱불 등은 몇몇의 기억이나 박물관의 한 코너에만 남아있다. 

전통공예가 잊혀져가는 만큼 전수자들은 줄고, 사장되는 기술들은 늘고 있다. 대부분의 기·예능 보유자들이 열악한 경제 조건으로 생계마저 어렵다며 불평을 토로한다. 전통공예는 재료비만 해도 어마무시한데, 작품 판매가 쉽지 않은데가가 국가에서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존을 위해 지원하는 금액도 크지가 않다. 

국가무형문화재나 시도무형문화재의 경우 매월 150만원 가량을 지원 받는다. 전수교육조교에게는 매월 40만원의 지원금이 지급되는데, 이수자에서 전수조교로 올라가는 데만 해도 십수년이 걸려 중도포기가 많다. 백동연죽장의 경우, 기능 전수자가 없어 ‘기능보유자 없음’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해제되기도 했다.

▲오동상감송학죽 (梧桐象嵌松鶴竹). 2018년 백동연죽장 보유자인 황영보 선생의 별세로, 현재 백동연죽장 보유자는 없는 상황이다. ⓒ한국문화재재단
▲오동상감송학죽 (梧桐象嵌松鶴竹). 2018년 백동연죽장 보유자인 황영보 선생의 별세로, 현재 기능 보유자 자리는 공석이다. ⓒ한국문화재재단

오랜 시간 우리 유물을 사진으로 담아온 구본창 작가는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이태리 가구나 스칸디나비아 가구, 미드 센트리 모던 등이 유행 중이다. 우리 목가구들을 보면 원시적이면서도 투박한 맛이 있어 참 매력적인데, 카탈로그 말고는 해외에 보여진 적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라고 언급했다. 요즘 유행 중인 해외 공예품들만큼 우리 가구도 참 좋은데, 그 매력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유럽식 인테리어가 각광 받는 요즘, 우리 전통 목가구들은 인테리어보다는 ‘수집품’이라는 말이 더욱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오늘날 대부분의 전통공예품들은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한국과 일본의 공예 산업

일본의 골든위크인 4월 29일부터 5월 5일까지, 일본 도자기의 본고장인 사가현의 아리타에서는 매년 도자기 축제가 열린다. 몇 주전 그 현장을 찾아가보니,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일제 도자기의 발상지에서 열리는 일본 최대 규모의 도자기 축제임에도 전반적으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양질의 공예품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만나볼 수 있었음에도 이마리 도자기 마을 안쪽에 위치한 공방들은 대부분 텅텅 비어있었다.

공방 한 켠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거나 반갑게 인사를 건내던 마을의 장인들은 대부분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이었다. “일본 마끼에 장인들의 모습을 보면 전부 머리가 하얗게 새어있다”라며, “앞으로 마끼에 만년필을 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미리 사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라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던 한 만년필 커뮤니티의 글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전통공예 강국으로 명성이 자자한 일본마저 이러한 풍경이라면, 한국은 어떠한 상황인가.

▲사가 현립 규슈도자문화관 소장 백자 청화 사자무늬 큰 접시.
▲사가 현립 규슈도자문화관 소장 백자 청화 사자무늬 큰 접시.

지난 3월 본지와 인터뷰 시간을 가졌던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1호, 김환경 칠화장은 “전통공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상황”이라며, “대를 이을 제자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 이 일만으로는 생활이 안 되다 보니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대를 못 이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죄인이 된 듯한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낀다”라며, “노력해도 안 되는 것 같은 현실에 암담한 기분을 느낀다”라고 토로했다.

김 칠화장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전통 공예는 일본처럼 저변 확대도 원활하게 되지 않고, 전통을 전승할 제자를 양성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그는 “일본의 장인 조합과 같이 공예인들과 소비자를 이어줄만한 기관의 부재”를 꼽는다. 

현재 문하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하 공진원)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정된 인력과 예산으로 공예 뿐만 아닌 디자인과 한식 등의 전통생활문화 분야까지 지원하고 있기에, 쇠락의 과정에 있는 전통 공예시장에 숨을 불어넣고 공예인들의 생활을 돕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공진원에 할당된 연간 예산은 작년 530억에서 올해는 480억으로 삭감됐다. 공진원 장동광 원장에 따르면, 공진원은 자체적으로 KCDF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공예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소속 학예인력은 아직 한 명도 없다. 

일본의 공예촌

일본 최초 도자기 생산지인 아리타 인근 이마리의 도공(陶工)마을, 오카와치야마는 3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에도시대 초기인 1675년, 아리타에서 생산되던 도자기들의 기술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비밀리에 도자기 가마를 깎아지른 절벽과 암벽으로 막힌 이마리로 옮긴 이래로 수많은 일본 도자기 장인들의 터전이 되어왔다. ‘비밀의 마을’이라고 불리었듯, 바위산을 뒤에 끼고 있는 마을은 옛 정취가 가득한 것이 오랜 시간 전통을 지켜온 듯한 모습이었다. 

▲이마리의 도공(陶工)마을, 오카와치야마 ⓒ김연신 기자
▲이마리의 도공(陶工)마을, 오카와치야마 ⓒ김연신 기자

이토록 철저하게 기술을 지키고 보존해온 아리타와 이마리의 도자기는 조선 도공 이삼평 (李參平)으로부터 출발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조선도공 납치계획에 따라 1590년대 일본에 끌려간 이삼평은 아리타에 위치한 아스미산(泉山)에서 백자광(白磁礦)을 발견한다. 1605년경 이곳에 ‘덴구다니요(天狗谷窯)’를 열었는데, 이것이 일본자기의 시초가 되었다.

아리타에서는 ‘도자기의 신’으로 불리우던 이삼평을 기리기 위해 우뚝 서있는 이삼평 비와 그의 묘소를 만나볼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자랑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속이 쓰린 풍경이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우리 도공과 빼앗긴 우리 기술이 이렇게도 잘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는 우리 도자기의 전통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도잔 신사의 도조 이삼평 비
▲도잔 신사의 도조 이삼평 비

이시카와현 고마쓰시에 위치한 전통공예촌 ‘유노쿠니노모리’는 옻칠공예 등 30종이 넘는 전통공예품의 고장이다. 야마나까 칠기, 구타니야키 도자기, 카가 유젠 기모노, 가나자와 금박과 칠기, 와지마 칠기 등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마을은 약 13만평의 면적에 대부분 단아한 일본 전통가옥으로 조성되어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있다.

일본에는 유노쿠니노모리와 비슷한 규모의 공예촌이 40개 가량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 정도 규모의 공예촌은 2018년 개관한 이천 도자예술마을(예스파크) 뿐이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의 공예촌들과는 다르게, 뒤늦게 설립된 만큼 대부분이 현대식 건물로 조성돼 ‘한국다움’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한국전통공예산업진흥협회에서 민간 사업으로 추진 중인 ‘청주시 한국전통공예촌 복합문화단지’는 여전히 완공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다. 

빼앗기는 장인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은 “요즈음 도공은 자기 발로 한국을 떠난다”라며, “임진왜란 때는 무력으로 우리 도공들을 데려갔다면, 지금은 ‘돈’으로 데려간다”라고 말한다. 일본에서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해, 우리 장인들이 마치 임진왜란 때처럼 고국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또다시 일본에 우리 문화를 뺏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우리가 우리 문화를 들여다보지 않는 동안 일본은 또다시 우리 전통문화를 눈여겨 보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우리 전통 공예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전통으로 가득해야할 인사동이나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우리 공예품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인사동 전통거리는 여전히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가게마다 값싼 중국산 제품들이 범람하고 있으며, 전주 한옥마을은 지나친 상업화로 정체불명의 외국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상업화된 전주 한옥마을 ⓒ이신우
▲상업화된 전주 한옥마을 ⓒ이신우

지난해 국내에서 인기를 끌던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도공마을 편》은 도공(陶工)마을 오카와치야마를 연상시키는 비밀의 도공(刀工)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작 중에 등장하는 도자기 형태의 오니(鬼, 일본의 전설 속 요괴)나 기술을 연마하고 후대에 전수하는 데 일평생을 다 바치는 장인들의 모습은 일본에서 그들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잘 전승해오고 있는지를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준다.

‘오카와치야마’나 ‘유노쿠니노모리’와 같이 오랜 전통이 보존되고 있는 마을은 한국에서는 단 한 곳도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칠용 회장의 말처럼, 시대가 변했음에도 우리는 우리 전통공예를 지키는 일에 소홀하고 있는 탓이다.

▲《귀멸의 칼날 도공마을 편》 중, 도공(刀工) 하가네즈카가 도자기 오니에게 공격 받아 목숨을 위협 받는 상황에서도 온 신경을 칼을 가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현대에도 일본에서 장인정신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귀멸의 칼날 도공마을 편》 중, 도공(刀工) 하가네즈카가 도자기 오니에게 공격 받아 목숨을 위협 받는 상황에서도 온 신경을 칼을 가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현대에도 일본에서 장인정신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전통공예 알리는 교육 필요

우리가 앞섰지만, 일본에 이름을 내어준 전통공예는 도자기 뿐만이 아니다. 칠화(漆畵) 역시 우리가 500년은 앞서 있지만, 백제와 신라로부터 전해진 칠화 기술이 일본에서 꽃을 피우게 되면서 일본 문화라고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해졌다. 

우리 민족이 일본에 전승한 칠화의 전통을 되찾자는 마음으로 사명을 가지고 칠화의 전승과 보존을 위해 60년을 바쳐온 김환경 칠화장은 “원래는 부산여대나 한남대, 배제대, 시립대 등에 옻칠학과도 있었는데 전부 없어졌다”라며, 전통공예 교육의 기회마저 점차 사라져가는 냉엄한 현실을 지적한다. 

이칠용 협회장은 “같은 전통분야인 국악은 국악고, 대학교가 있고 국립국악원을 비롯해 부산, 남원 등 전국에 국악을 전승·전수할 공간, 조직들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전통 공예분야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라고 말한다. 

이시카와현의 가나자와시에는 장인을 양성하는 ‘가나자와 직인(職人, 쇼쿠닌) 대학교’가 있다. 1996년에 설립 이래로 석공, 기와, 미장, 정원, 목수, 다다미, 창호, 판금, 표구 등 9가지 일본의 전통 기술을 전승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대부분의 예산이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수업료는 무료다.

우리나라에도 문화재청장 소속 국립학교인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2000년 3월 충남 부여군에서 개교했지만, 학과가 7개로 전통공예 분야 교육과정은 한정적인데다가 규모는 대학원 인원을 포함해도 전교생이 600~700명에 그친다.

▲7년이 걸려 완성한 김환경 칠화장의 역작 ‘연화문건칠화병’
▲7년이 걸려 완성한 김환경 칠화장의 역작, ‘연화문건칠화병’

우리 전통을 지키려면

가나자와 시는 ‘사람’을 문화 전략 중심에 두고 있다. 가나자와 직인대학과 우타츠야마 공예공방은 모두 ‘사람’을 길러내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시설들이다.

1989년 가나자와시 백주년을 기념해 개관한 우타츠야마 공방은 ‘보여주고, 길러내고, 참여시키기’를 핵심 슬로건으로 하며, 시민들과 전통 공예를 잇고 주목 받는 공예가들을 양성해오고 있다. 도예, 칠기, 염색, 금속, 유리 등 5개 공방으로 구성된 공예기술 전수관이자 명문 연수 기관으로서 가나자와시의 공예문화를 이어나가며 이름을 알렸다.

가나자와 시민들은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가나자와시 어디에든 전통 양식 건축물들이 있고, 건축물과 마을 자체가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볼거리이자 문화상품으로 기능하고 있다. 

▲규수 도자기 문화관 전시장에 진열된 도자기들 ⓒ김연신 기자
▲규수 도자기 문화관 전시장에 진열된 도자기들 ⓒ김연신 기자

교토 다음으로 전통 문화를 자랑하는 가나자와 시는 2009년 유네스코로부터 ‘창의도시’로 선정된 바 있다. 창의는 때론 단순히 새로운 것을 찾는 것보다는 기존의 전통을 우직하게 좇는 것에서 출발한다. ‘도파민 중독’이 화두에 오르는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잊혀진 ‘장인정신’인지도 모른다. 우직하게 한가지에 몰두하는 장인들의 정신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느린 가치’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국가와 문화의 정체성은 역사와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의 것, 우리의 정체성을 더는 잃지 않으려면, 귀중한 우리 무형 자산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대로라면, 김환경 칠화장의 우려처럼 우리 전통 공예의 맥은 일본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