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창단 30년 맞는 서울오페라앙상블, 푸치니 서거 100주년 갈라 공연 대성황
[이채훈의 클래식비평]창단 30년 맞는 서울오페라앙상블, 푸치니 서거 100주년 갈라 공연 대성황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 승인 2024.03.19 2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날을 가득 채운 푸치니의 사랑 이야기, 관객 만족 시켜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2024년의 봄은 푸치니와 함께 왔다.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의 올해 첫 무대는 푸치니 서거 100주년 기념 갈라였다. 3월 16일(토) 오후 3시 연세대백주년기념관. 새봄의 햇살 속에 도착한 관객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봄은 역시 사랑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공연은 가난한 시인 로돌포와 이웃 처녀 미미의 사랑이 싹트는 순간에서 시작됐다. 사랑이 있는 삶은 풍요롭다. 로돌포는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그는 “사랑의 시와 노래를 귀족처럼 누리며,” 그의 영혼은 “꿈과 환상 속에서 백만장자와 같다.” 미미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지붕과 하늘이 보이는 작은 하얀 방’에 혼자 살지만, 4월의 첫 태양은 그녀를 비추고, 이른 봄의 첫 키스는 그녀의 것이다.

차가운 겨울이 있었기에 봄은 더욱 찬란하다. 무제타와 마르첼로는 여전히 다투지만 이 또한 젊은 남녀의 사랑스런 모습이다. 가엾은 미미는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 <마농레스코>, <자니스키키>, <수녀 안젤리카>, <제비> 등 8편의 오페라 하이라이트가 이어졌다. 푸치니 오페라에서 사랑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세 주인공이 모두 죽는 비극적 사랑 <토스카>, ‘불타오르는 얼음공주’를 사랑의 힘으로 제압하는 <투란도트>, 강대국 남성에게 모든 걸 바치는 초초상의 순애보 <나비부인>…. 이 모든 사랑은 ‘사랑의 천재’ 푸치니가 꿈꾸고 체험했던 사랑에 다름아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났지만 그의 오페라에 담긴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리톤 장철이 푸치니로 분장하여 작품과 생애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재미있는 연출이었다. 장철의 탁월한 딕션과 연기력은 관객들의 이해에 큰 도움을 주고 음악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투란도트> 중 류의 아리아 <얼음장 같은 공주의 마음도>가 끝난 뒤 푸치니(=장철)가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훌륭한 연출이었다. 오페라에서 류는 칼라프 왕자의 이름을 감추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데, 푸치니는 실제로 억울하게 죽은 하녀 도리아를 애도하는 마음을 류의 캐릭터에 담았다. 이러한 사실을 푸치니(=장철)가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면 좀 더 친절한 연출이었을 것이다.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이 푸치니 사후 100주년을 맞아 올린 푸치니 오페라 갈라에서 푸치니로 분장한 바리톤 장철이 푸치니의 작품과 생애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사진=강기갑)

여러 성악가들이 혼신의 열창으로 멋진 무대를 이루었다. 투란도트 공주역의 소프라노 강효진과 칼라프 왕자역의 테너 김중일의 수수께끼 장면은 압권이었다. 긴박감 넘치는 두 사람의 대화, 특히 강효진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청중들은 숨을 죽였다. 강효진은 1부에서 <마농레스코>의 아리아 ‘홀로 나 버려졌네’에서 섬세한 감정과 드라마틱한 표정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김중일이 1부에서 들려준 <토스카>의 카바라도시는 꽉찬 목소리와 탄탄한 음악성이 인상적이었고, 그가 부른 ‘별은 빛나건만’은 청중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소프라노 나정원이 부른 <자니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이날 공연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나비부인>의 초초상을 맡아 ‘어떤 개인 날’을 부른 소프라노 손주연, <수녀 안젤리카>의 비통한 아리아 ‘엄마 없이 살 수 있을까’를 열창한 소프라노 정시연은 주인공의 캐릭터를 잘 살린 연기와 노래로 청중들을 만족시켰다. <나비부인>에서 핑커톤을 맡은 테너 박기천은 다소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소리는 전혀 흠잡을 데 없었다. 푸치니(=장철)는 박기천이 칠순을 바라보고 있으며 젊은 시절 유럽에서 맹활약한 ‘한류 1세대’라고 설명하여 큰 박수를 이끌어냈다.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이 푸치니 사후 100주년을 맞아 올린 푸치니 오페라 갈라에서 투란도트의 한 장면.(사진=강기갑)

오케스트라가 없는 건 물론 아쉬웠다. 그러나 피아니스트 김보미는 오케스트라에 버금가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초반에는 긴장이 덜 풀렸기 때문인지 악보를 읽는 수준의 연주라서 다소 염려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아노의 독자적인 움직임과 성악가들의 노래가 어우러져 생동하는 음악을 이뤄냈다. 푸치니(=장철)는 리허설 과정 내내 음악코치로 어깨가 무거웠을 김보미에게 박수를 보내도록 유도했다.

제대로 무대를 갖춘 공연은 아니었지만 간략한 의상, 분장, 소품으로 분위기를 적절히 표현했고 성의있게 준비한 슬라이드로 시각적 재미를 더했다. 푸치니의 다양한 사진은 물론 <나비부인>에서 멀리 보이는 군함, <자니스키키>에서 피렌체 베키오 다리 등 흥미로운 영상을 제공했다.

▲서울오페라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이 푸치니 사후 100주년을 맞아 올린 푸치니 오페라 갈라의 무대인사의 한 장면.(사진=강기갑)

올해는 푸치니 서거 100년을 맞아 유럽은 물론 국내에서도 푸치니 작품들이 연이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이날 갈라 공연은 푸치니를 추도하고 그의 음악을 더 많은 이들이 즐기게 하는 다양한 노력의 첫걸음이었다. 올해는 또한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창단 30년을 맞는다. 여전히 힘겨운 길이겠지만 오페라의 대중적 확산과 우리 창작 오페라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온 서울오페라앙상블이 알뜰한 수확을 거두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