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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떠진 한 겹의 눈꺼풀, 아시아의 자유의 몸짓과 해방으로의 열망

기사승인 2019.02.12  18: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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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전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전은 한국, 일본, 싱가폴의 3국 협력 프로젝트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미술의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된 미술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내용은 아시아의 역사적 변화로부터 발생된 예술적 실험의 결과물이다.

서양으로 부터 받은 예술적 영향과 근대화에 저항하기 위한 일련의 예술로서, 급진적인 예술의 실천은 싱가폴,태국,인도에서는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중국에서는 80년대부터 90년대, 일본 타이완 한국과도 같은 동북아시아의 경우 60년대부터 70년대에 일어났다. 

그 내용으로는 탈식민주의, 반모더니즘, 민주화 등이 있으며 이러한 저항성 짙은 예술은 예술의 변화를 꾀했다. 전시구성은 '구조를 의심하다' '예술가와 도시' '새로운 연대' 다. 

 전시 도입부는 동아시아 전반에서 일어났던 실험적 예술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사회 정치 현실에 맞닥뜨리는 예술가의 '태도'에 더욱이 집중한 점이 하나의 특징인데, 작가의 저항태도를 유쾌하게 잘보여준 작품이 바로 인도네시아 작가 F.X 하르소노의 <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다. 

   
▲ F.X. 하르소노(인도네시아)/<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1977/2018/ 크래커, 나무 탁자, 의자, 책, 펜, 지시문, 가변 크기/ⓒ F.X. 하르소노; F.X. 하르소노 제공

장난감 같기도, 과자 같기도 한 분홍색 총들이 산더미로 쌓여있는 이 작품은 그 제목으로 볼 수 있듯이 폭력에 대한 경고를 암시하는 듯하다. 우리가 즐겨먹는 크래커를 총 모양으로 만든 이 작품은 언뜻 보면 귀여운 놀잇감처럼 보이지만 '총'이라는 사물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마냥 '과자'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시작한 것은 1977년대이다. 당시는 군사정권이 국가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작가는 그러한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옆에 놓여진 탁자와 책상은 관객들이 참여하여 직접 작품에 대한 생각, 사회에 대한 고찰을 적어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실제 판매되기도 했다는 이 작품은 폭력이 일상에 침투한 모습과 더불어, 폭력이 띄고 있는 다양한 무늬와 가면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경각심을 준다.

크레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필자는 어쩔 줄 몰라하는 자신을 생각했다. 인간이 자행하는 폭력은 아이들이 먹는 크래커처럼 쉽게 부서질 수 없음을 우리는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격동의 시기'라고 부를 수 있는 아시아의 당시는 사회 전반뿐만 아니라 여러 문화의 모든 측면에 걸친 관습과 구조에 질문을 던졌다. 그때 등장한 것이 '미술art'에 관한 의심이었다. 기존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동시에, 미술가들 자체가 미술계의 제도와 권력에 대해서 인지하고 그것을 비판하는 목적으로서의 작품을 창작한 것이다.

   
▲ 이강소/〈소멸?선술집〉/1973 /C- 프린트 /60×90 cm (×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가 제공

1970년대 대표적인 실험 작가 이강소는 전위미술운동을 전개한 작가로, <소멸- 선술집>이라는 작품을 통해 구조와 형식을 작가가 제시하면, 관객의 참여가 내용이 되는 방식으로 작품을 창작했다. <소멸-선술집은 실제 선술집은 탁자와 의자를 화랑에 놓고 일주일 동안 관객들과 소통했으며, 이것을 통해 언제 가는 사라져 버릴 우리의 일상을 제시했다.

우리의 일상은 기억 속에 재현되는 순간, 실제의 자리에선 '소멸'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상의 추억과 경험은 우리의 뇌리 속에 전시된 하나의 작품인 것이 아닐까. 

1980년대는 산업혁명이후 소비자본주의가 아시아의 전반에 본격적으로 침투한 시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사고 파는 행위로 전락하고, 인간조차도 그 행위에 참여하면서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현실을 '지옥'으로 표현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바로 오윤의 작품이다.

   
▲ 오윤 (한국)/<마케팅 I: 지옥도>/1980/캔버스에 혼합 재료/90.5 × 122 cm/개인 소장/ 작가 유족 제공

작가 오윤은 사회비판적 미술을 추구했으며, 민중미술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전시된 작품 <마케팅 I: 지옥도>는 조선시대 불화인 황엄사 시왕도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작품은 당시 유행했던 제품들- 맥심, CX3, 코카콜라 들을 간판으로 내건 지옥을 보여준다.

펄펄 끓는 물에 내던져지는 화탕지옥은 다름 아닌 환경 파괴의 주범 '휘발유'를 통해 표현했으며, 맥심과도 같은 인스턴트 커피 회사 이름을 내건 지옥에서는 사람의 몸이 반으로 내갈리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저자본 대량생산의 늪에서 허우적 대는 인간들의 모습이 작가의 눈에는 지옥으로 보였으리라. 거대 기업이 된 코카콜라와 여전히 믹스커피에 속을 달래는 현대인을 생각하면 약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형벌'은 계속 되고 있는 듯 하다.  

1960년대 이후 일상에서 예술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던 젊은 예술가들은 지신들을 대중의 일원으로 여겼다. 그들은 거리와 도로, 지하철과 같은 일상적인 공간에서 급진적 행위를 통해 도시 개발, 권력 구조 등에 저항했다. 그들의 저항은 말하자면 말리기엔 애매하고 안말리자기엔 폭발적인 형태를 띄고 있는 싸움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 히라타 미노루 (일본)/하이레드센터의 <청소 이벤트>(일명 <수도권청소정리촉진운동>)/1964 /2018/젤라틴 실버 프린트/34 × 23.4 cm (× 5)/타카 이시이 갤러리 필름 제공

하이레드센터의 주요 맴버들은 1964년 10월 16일, 흰색 유니폼의 청소 복장을 하고 '깨끗이(Be Clean)'이라는 간판을 세워둔 채, 걸레, 빗자루, 수세미 등의 청소 도구로 거리 곳곳을 청소하는 <청소 이벤트>를 통해 도시환경미화작업에 대한 정부의 강박적인 노력을 조롱하고 풍자하였다.

당시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조차 이러한 광경을 도시환경미화작업이라 착각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 정도로 그들의 작품은 은밀하면서도 완벽하였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저항성 짙은 작품들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이번 전시에서 그 답을 찾는다면 바로 '연대'일 것이다. 아시아의 아방가르드 예술 전략 중 하나는 미술관을 벗어난 대안적인 예술 집단 구성과 활동이다.

그러한 예술 활동은 '단일주체'에서 '공동 협업'으로 예술 중심을 이동시켰다. 예술가 개인의 천재성과 같은 신화를 부정하고 '예술가'들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이때 그들이 사유한 것은 근대화에 대한 회의와 자연으로의 회귀였다.

   
▲ 장환 (중국) /〈이름 없는 산을 1미터 높이기〉/1995 /비디오 (디지털 전환), 컬러, 사운드 /6분 /퀸즐랜드미술관 소장 ⓒ 장환 스튜디오 , 페이스 갤러리 제공,퀸즐랜드미술관/ 모던 아트 갤러리 사진 제공

그 대표작으로는'베이징 이스트 빌리지' 작가들의 <이름 없는 산을 1미터 높이기> 등이 있다. 맨몸으로 쌓아올린 그들의 몸들은 산-자연과 우리의 몸들이 합일되는, 결국 자연과 닮은 우리의 맨몸을 쌓아올리면서 우리의 본질이 '자연'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아시아의 근대화로 인해 격동의 시기였던 60년대부터 90년대는 인간의 기계화, 소비 자본주의 등 인간성에 대한 물음과 본질에 대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는 시기였다. 이번 전시가 '내부로 부터의 자각'인 이유는 아마도 예술가들 스스로 그것에 저항하는 몸짓을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전통을 유지하려는 권력유지의 몸부림도 아니었고, 더 예술을 정교하게 하려는 기술적인 노력도 아니었다. 단지 그들은 아시아에게 불어닥친 '근대화의 바람'에 저항하는 한 물결처럼 일렁였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변화들, 사회적 변화, 개인적 변화 등 '변화'는 우리를 실로 자각하게 한다. 담배연기에 기침을 하듯, 폭력에 눈살을 찌뿌리듯, 외부로 부터 끼쳐지는 영향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번 전시는 예술가들이 아시아로 불어닥치는 근대화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예술적 시선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외부로 부터의 변화는 과연 예술가들의 정신에 어떤 사유를 남겼을까. 호기심이 인다면 이 전시를 추천한다. 

필자는 이번 전시 주최측인 일본,싱가폴,한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의 작품이 어떻게 조명되었는가에 대해 관심이 갔다. 전시에 참여한 주요 국가들 외에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 등지의 예술작품들과 그 특색이 궁금해졌다. 또한 추후 이 전시가 일회성 전시가 아닌 하나의 프로젝트로서의 성격을 확립해 순회 전시를 잘 마칠지 관심이 모아진다. 

하채연 인턴기자 press@s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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