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건 ‘한복’ 맞고, 저건 ‘한복’ 아니야” 도대체 왜?
[기획] “이건 ‘한복’ 맞고, 저건 ‘한복’ 아니야” 도대체 왜?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10.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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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교류 이어진 한ㆍ중ㆍ일 3국, 복식 유사성 존재
‘왜색’ 요소, ‘디자인 선점’의 문제 확장선일 수 있어
한복 한 요소만 활용, ‘한복’이라 볼 수 있나
지적보다는 격려 필요, 한복 전문가들의 옷 ‘우리의 것’ 맞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지난 8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ㆍ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연 《2023한복상점》 개막식 패션쇼 한복에 대해 한 문화계 인사가 ‘왜색’을 지적했다. 전통무용 한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여러 작품 중, 노란 색과 검은 색을 사용해 삼각모까지 함께 쓰고 있는 복식이었다. 아무리 현대적으로 개량한 한복이라지만, 일본 기모노의 느낌이 많이 난다는 지적이었다. 더군다나 국가기관에서 개최하는 ‘한복’ 행사에서 굳이 정체가 모호한 한복을 패션쇼 의상으로 선보이는 지에 대한 의문도 표했다.

▲지난 8월 《2023 한복 상점》 개막식 패션쇼에 선보여진 현대화가 가미된 한복, 한 문화계 인사는 해당 한복이 왜색이 짙다고 지적했다. ⓒ서울문화투데이
▲지난 8월 《2023 한복 상점》 개막식 패션쇼에 선보여진 현대화가 가미된 한복, 한 문화계 인사는 해당 한복이 왜색이 짙다고 지적했다. ⓒ서울문화투데이

이러한 ‘왜색’ 지적에 대해 기자는 해당 의상에 대한 의견을 좀 더 들어봤다. 의견은 다양했다. 한국 전통 무용복을 현대적으로 화려하게 표현했으며, 삼각모는 승무 복식 중 하나로 느껴진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 한 편에서는 노란색과 검은색이 한복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색상이라서 낯설고, 삼각모는 승무가 연상된다기보다 일본 사무라이의 모자 같다는 의견도 함께 있었다.

우리나라의 전통 의복인 ‘한복’에 대한 이런 논란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잊을 만 하면,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다. 최근 불거진 논란으로는 올 2월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 ‘한복근무복’에 대한 지적이었다. 해당 근무복이 검은색을 대표적인 색상으로 사용했고, 깃이 일본 기모노의 하네리(半衿)와 유사하고, 동정(저고리 깃 위에 덧대는 헝겊)의 폭이 좁아 일본의 복식을 떠올리게 한다는 누리꾼들의 지적이 있었다.

당시 논란이 격화되자 한국전통문화전당은 보도 자료를 내고 “고전과 현대의 융ㆍ복합적 요소를 가미해 만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일본 의상과의 유사성 논란에 휩싸였다”라며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라며 논란을 일단락 시켰다.

하지만 해당 근무복을 디자인한 리슬의 황이슬 대표는 ‘왜색’의 요소로 지적된 것은 모두 우리 ‘한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알렸다. 한복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검은색’은 우리 고유의 전통 오방색 중 하나의 색으로, 왕이 입던 ‘현의’, 학자들의 ‘심의’에 쓰이는 색과 동일하다. 또한, 태극기의 검은색 괘와 바탕의 흰색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얇은 깃은 조선시대 칼깃(칼끝처럼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깃)을 기본으로 삼아 제작됐으며, 동정 너비 역시 시기에 따라 달라지며, 넓으면 ‘한복’ 좁으면 ‘일본 옷’이라는 개념은 아니라고 밝혔다.

▲지난 2월 '왜색' 논란이 일었던 한국전통문화전당의 ‘한복 근무복’ (사진=한국전통문화전당 제공)

이러한 해명이 있었음에도 한국전통문화전당의 ‘한복 근무복’ 도입은 보류됐다. 한복 전문가들의 검토 끝에 문제가 없다고 확인됐음에도, 시민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고수됐다. 우리 일상 속에서 한복을 더욱 가깝게 즐기고, 한국이 가진 정체성을 계속 이어나가고자 했던 초기의 긍정적인 목적은 모두 사라지고 만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복식인 ‘한복’에 대한 국민들의 이런 날선 감정들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대게 한복에 덧 씌워지는 왜색 논란들은 ‘그렇게 보인다’라는 감각적인 느낌으로부터 시작하곤 한다. 왜 그런 느낌들이 불러일으켜지는 것일까. ‘한복’이 우리의 일상에 좀 더 가까워지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콘텐츠로 분명하게 자리하길 바라는 것은 아마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지점일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한복’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왜색 논란’의 이유와 이를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자 했다. 유홍숙 한복문화학회 인천지회장(대한민국 명인회, 전통난모 명인), 원광대학교 패션디자인산업학과 최정 교수, 모던한복 브랜드 리슬(LEESLE)의 황이슬 대표(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의류학과 석사)가 함께 의견을 나눠줬다. 우리 일상에 한복이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 한복이 아름다운 우리네 의복인 것은 모두가 분명히 알고 있는 바다.

▲지난 8월 《2023 한복 상점》을 즐기고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들 ⓒ서울문화투데이

지속되는 ‘한복’ 논란, 이유는?

동아시아 3국인 한국ㆍ중국ㆍ일본은 예로부터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해 각국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존재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의복에서도 서로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 사실이다. 복식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 문양, 색상, 형태의 유사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리슬의 황이슬 대표는 “한중일의 의복은 카프탄(caftan)형 의복유형에 해당하는데, 이는 고대부터 동아시아 여러 민족들이 착용해온 대표적인 의복 유형”이라며 “조선시대에 궁중의복 중 유교적 관습, 제례행사와 관련된 복식은 중국(유교의 본국)으로부터 사여(賜與) 받아 사용했기에, 왕의 대례복 신하들이 입던 단령 등은 중국으로부터 유래한 옷이 많다”라고 한복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설명했다.

지리적, 역사적으로 꾸준히 교류를 나눈 국가이기 때문에 의복에 유사성은 확실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각 나라의 전통 복식은 명확하게 존재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굳이 대중은 어떤 한복에선 ‘왜색이 느껴진다, 중국풍 옷 같다’라고 지적을 하는 것일까.

이 지점에 대해서 원광대 최정 교수는 ‘디자인 선점’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최 교수는 “고대로부터 한국, 일본, 중국이 어떤 비슷한 디자인을 사용해왔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디자인을 누가 먼저 선점하고 알리고, 세계적으로 각인시켰느냐에 따라서 그 디자인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한 인식이 정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황 대표도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일본의 경우 애니메이션, 영화, 음식 등을 통해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일본의 전통복식을 알려오는 노력을 해왔다. 매체의 영향으로 일부 젊은 세대들에겐 한복보다 일본의 복식이 눈에 익은 것도 사실이다. 10대나 20대의 경우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이누야샤> 등으로 일본 무녀 복식을 먼저 인지하게 됐고, 이와 비슷한 경우 ‘일본 풍’의 옷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의 주인공 모습, 일본 복식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현대 한국인들은 한복을 경험할 기회가 흔치 않다. 사극 드라마나 행사용 예복으로 잠깐씩 한복을 접할 뿐, 한복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습득할 창구가 많지 않은 현실이다. 예를 들어, 현대 한국인들 중 각각 한복의 명칭이나 고름 매는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쉽게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한복’에 대한 각기 다른 정의도 ‘논란’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한복(韓服)’이란 “우리나라의 고유한 옷. 특히 조선 시대에 입던 형태의 옷을 이르며, 현재는 평상복보다는 격식을 차리는 자리나 명절, 경사, 상례, 제례 따위에서 주로 입는다. (중략)”라고 정의돼 있다. 그리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한복(韓服)’이란 “우리나라 고유의 의복, 전통한복이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상·관습·행위·형태·기술 등의 양식과 정신이 깃든 한복으로, 우리 고유 의복인 치마·저고리·바지·두루마기에 조끼·마고자가 포함된다.(중략)”라고 정의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선 ‘한복’의 기원을 고구려 고분 벽화로부터 정하고 있다.

학자 별로 ‘한복’에 대한 정의를 다르게 갖고 있기도 하다. 유홍숙 한복문화학회 인천지회장은 통상적으로 ‘조선 시대’의 의복을 한복으로 정의한다고 봤고, 황 대표는 좁은 의미에서는 고조선~조선 시대 복식을 한복으로 부르고, 넓은 의미의 한복은 글자 그대로 ‘한국적인 옷’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복’은 해석하기 나름에 따라 그 정의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는 ‘한복’은 ‘한국적인 옷’이라는 것이다. 그 의미는 변치 않는다.

유 지회장은 “한복문화학회 인천지회에서 《2023 한ㆍ중ㆍ일 문화교류축제》를 열고 있는데, 이 축제를 통해서 한ㆍ중ㆍ일 전통복식을 전시하고, 유사성과 다름에 대해서 이해의 장을 열고 있다”라며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중국 분들과도 많이 소통을 했고, 최근 불거진 ‘한푸’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동의한 지점은 각 나라별로 고유한 미와 선을 가지고 있고 다른 복식이라는 것이었다. ‘한복’으로 제작된 의복은 ‘한복’의 선과 미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8월 《2023 한복 상점》 개막식 패션쇼에서 선보여진 의상 ⓒ서울문화투데이

전통한복, 현대한복…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한복으로 덧씌워지는 ‘왜색’이나 ‘중화풍’ 논란 등은 대게 현대적 요소가 가미된 ‘한복’에서 불러일으켜지기 마련이다. 일각에서는 한복의 한 요소만 가지고 와서 활용해놓고, 과연 그것을 ‘한복’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걸그룹 블랙핑크가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 입고 나온 의상이 과연 ‘한복’으로 볼 수 있는지 지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해당 의상에 대해서 ‘기모노’와 비슷하다는 논란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해당 논란들은 단순히 ‘잡음’으로 종결됐고, 당시 의상을 제작했던 단하주단의 김단하 대표는 도포, 철릭, 가슴가리개 등에서 모티프를 따서 의상을 디자인 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 역시 성균관 대학교 대학원 의상학 석ㆍ박사를 수료했으며, 2016년부터 궁중복식연구원에서 공부를 이어온 전문가다.

이러한 끊임없는 논란에 대해, 유 지회장은 “우리 한복 연구가들은 우리의 옷 ‘한복’이라고 제작을 해, 확실한 우리 것을 선보이는데 논란이 일 때마다 속상하다”라며 “물론 ‘퓨전’이라는 명목 하에 논란이 일 수 있는 디자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한복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제작한 의복은 ‘한복’이 맞다고 말하고 싶다”라는 뜻을 전했다.

최 교수는 전통한복과 현대한복의 갈래는 확실히 나눠야 한다고 짚었다. 우리가 보존해야할 전통한복의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보존하고, 동시에 현대적으로 변용을 해 우리 삶 속에 녹여낼 수 있는 현대한복이 있다면 그 변화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복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가 쉽지만은 않다. 디자이너로서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한복의 요소를 선보이면서 아주 전통적인 것부터 선보이면서, 거기서 확장된 또 새로운 한복의 요소를 선보여 나가야 한다고 느낀다”라고 말했다.

▲블랙핑크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 장면

황 대표는 “‘한복’은 창작자가 의도를 가지고 한국적인 것을 상당히 넣어 디자인 한 것이라면, ‘한복’이라고 볼 수 있다”라며 “실루엣이나 구성은 서양요소를 사용했지만 소재나 문양 등으로 한국적인 것을 담았다면 그것도 한복이라고 부르고 있다. 다만, 후자의 한복은 일반적으로 대중이 떠올리는 조선후기양식의 한복과 개념차이가 커서 오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모던 한복’이라 구분해 부르고 있다”라며 현재 전통한복과 현대한복에 대한 가름을 언급했다.

‘한복’에 대한 ‘논란’은 어떻게 보면, ‘한복’을 향한 대중의 눈에 인식된 전통의 관념이 합치돼 계속 이어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복식 한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해!’라는 주장에서 조금 시야를 확장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복’은 우리 민족의 복식이다.

우리 일상 속 한복, 어떻게 녹여내야 할까

황 대표는 케이팝이 판소리나 민요는 아니지만, 지극히 한국적이고 한국의 색을 담고 있기에 ‘한국 음악’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처럼, 한국적인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담은 디자인은 한국적인 옷 ‘한복’이라고 불러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일상 속 한복문화 확산을 위해 매년 《한복문화주간》을 개최하며, 국민 삶 속에서 ‘한복’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짚고 있다. 또한, 한복의 유통망 확장을 위한 《한복상점》 행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복교복이나 한복근무복 도입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한복’이라는 전통 의복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고유의 복식이며, 이는 보존하는 동시에 우리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한다. 한복은 박물관에 있는 ‘유물’이 아닌 살아있는 우리의 ‘옷’이 돼야 한다.

▲《2023 한복문화주간》 홍보영상 장면 (사진=한복진흥센터 유튜브)

한복 업계에 종사하며, 한복을 알리고자 하는 디자이너와 인플루언서, 전문가들은 ‘한복 대중화’를 위해 먼저 달라지길 바라는 것은 대중이 한복을 좀 더 자주 만나고, 자주 입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복을 위한 시도와 노력에 대해 지적보다는 격려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많은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좀 더 편리하고, 좀 더 새로운 것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전통이나 우리의 근원, 뿌리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복’을 사랑해서, 그 곳에 남아있는 이들이 있다면, 지적보다는 격려와 응원을 전하며 우리 스스로 한복을 한 번 더 입어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