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자 인터뷰] 박장렬 연출가 “재미있는 연극도 필요하지만 생각하는 연극도 있어야한다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자 인터뷰] 박장렬 연출가 “재미있는 연극도 필요하지만 생각하는 연극도 있어야한다
  • 임동현 기자/하채연 인턴기자
  • 승인 2019.02.1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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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위로와 치유 받는 것이기에 ‘정신적 복지’”

박장렬 연출가는 <이등병의 엄마>, <집을 떠나며> 등의 연출가로 알려져 있지만 ‘전 서울연극협회 회장’이라는 직함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럴 만하다. 그가 서울연극협회의 수장을 맡았을 당시 연극계는 서울연극제 아르코예술극장 대관 문제, ‘블랙리스트’ 등으로 시끌시끌했고 이를 고치려는 연극인들의 단결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그리고 연극계의 이러한 노력은 ‘블랙텐트’를 만들었고 촛불혁명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이후 불거진 ‘미투’는 연극계가 자성을 하고 거듭나야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됐다.

그는 ‘재미있는 연극’도 좋지만 ‘사유하는 연극’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관객이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점은 비판의 소지가 있지만 도리어 관객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어떤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연극이 가지는 ‘사유의 기능’에 부합하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연극’, 그리고 대한민국 연극제 예술감독으로 연극을 더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박장렬 연출가에게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연극부문 문화대상을 수여했다. ‘예술은 정신적 복지’라는 인상적인 수상소감을 남긴 박장렬 연출가의 연극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 박장렬 연출가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낌이 어땠는지

우선 감사하고 상을 받는다는 말을 듣는 순간 지난 한 해를 돌이키게 됐다. 지난 기간 연극계도, 나에게도 여러 일이 있었는데 잠시 이전 생각을 하게 되고 감회가 깊었다.

수상소감에서 ‘예술은 정신적 복지’라는 말을 했다. 소감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싶다

어릴 때는 좋아서 시작하잖나.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고등학생 때 어떤 연극 공연을 재미있게 봤는데 공연이 끝난 뒤에도 자리에 앉아 텅빈 무대를 보는 것이 신기했다. 방금 전만 해도 정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던 곳인데 그 곳이 텅 비니 느낌이 이상했다. 

그걸 계기로 연극을 시작했고 대학에서 연극을 했는데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에 ‘돈이냐 예술이냐’를 결정했다. 당시에 매니지먼트 회사로 오라는 제안도 왔는데 거기 가면 연극을 할 수 없잖나. 돈보다는 예술을 하자고 선택했다. 그 다음부터는 갈등이 쉽게 풀렸다.

연출가 데뷔작도 만들고 공동체도 만들고 저예산 연극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찾고 서울연극협회장까지 했는데 그러면서 기금도 많이 받았다.  우리 어머니가 세탁소를 오래 하셨는데 세탁소 잘한다고 국가가 돈을 주지 않잖나? 그런데 우리는 국가가 돈을 주니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래서 사회적 기능에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가졌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2,30대 초반은 내가 좋아서, 중반부터는 사회적 기능에 관심을 가졌고 협회장을 하면서 예술이 가진 정신적 복지를 생각하게 됐다.  음악, 미술 등 각 장르가 정신적 복지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미 우리 곳곳에 다 뿌려져 있다. 그것들이 없다면 참 삭막하겠지.

연극이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하지만 작품을 보면서 조금씩 뒤를 돌아보게 되지 않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충족감을 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생각하는 게 한창 서울연극제 문제로 너무 힘들던 시절 대학로를 왔다갔다하다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유럽 예술영화를 보게 됐는데 그 영화를 보고 엄청 위로를 받았다. 감독하고 나하고 일면식도 없고 감독도 한국에서 영화가 상영되어 한 관객에게 위로를 줄 거라고 생각했을 지 모르지만 작품을 보며 내가 위로를 받은 것이 바로 정신적인 복지라고 보고 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서울연극제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관 문제로 마찰이 불거졌고 이로 인해 연극계가 본격적으로 투쟁에 나섰는데

워낙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기에 ‘뭐지?’하고 문제를 파악하는 게 우선 힘들었다. 연극계 역사상 최초로 벌어진 일이었기에 무슨 문제인지를 아는 것이 먼저였고 파악해보니 대관 탈락이 예술위나 문체부의 일이 아닌 ‘그 위의 일’이라는 정보가 있었다. 문제는 이게 심증이지 팩트가 아니었기에 드러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아르코예술극장은 상징성이다. 대학로는 연극이고 연극인은 아르코에 대한 의미와 상징성이 있다 쫓겨난 느낌이다. 문제는 쫓겨난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유도 모르고 쫓겨나니 당황스럽고 화가 난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기 주도적으로 작품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기에 이들이 예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걸 뺏겼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나. 

여기에 ‘협회도 공정하게 경쟁을 해야한다’는 말이 나왔고 ‘박장렬이 사회 비판 목소리 내고 성명서 내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됐다’는 비난이 나와서 힘들었다. 삭발도 하고 여러 행동을 하던 중에 ‘블랙리스트’가 드러났다. 만약 블랙리스트가 안 터졌으면 이 문제는 박장렬을 비롯한 연극인들의 잘못이라는 결론으로 끝났을 지도 모른다.

타 장르 관계자들이 연극계가 단합하는 모습을 부러워하는데

대학로가 그래서 소중하다. 한데 모여잇으니 소문이 빠르고 정보력이 빠르고 서로 만나고 스킨쉽을 하니 소통이 빠르다. 작금의 문제들은 ‘동네 문제’로 치부하기가 어려웠고 그렇기에 다들 뭉칠 수 있었고 액션도 할 수 있었다.

회장을 연임을 해서 6년을 했는데 지난 5년은 훈련의 과정이었다고 본다. 만약 내가 회장을 맡은 초창기에 서울연극제 문제가 불거졌다면 혼란이 왔을 텐데 내가 6년째 회장을 맡을 때 일이 터졌다. 활동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엔 원로들이 목소리를 높이면 후배들이 따라가는 모습이었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은 우리 때가 처음이었는데 우리를 통해 ‘이렇게 바뀌는구나’라는 흐름들이 생긴 것 같다. 

▲ 올해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을 수상한 박장렬 연출가

그렇게 세월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지난 2년을 돌이켜보면 어떤가

블랙리스트에 촛불정부를 거치면서 많은 탄압이 있었는데 그리고 나서 바로 ‘미투’가 터졌다. 연극계가 자정을 할 수 있는 시기였는데 미투가 터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났고 또 다시 주춤했다. 나도 충격이 컸다. 내가 아는 연출가의 경우 장모님이 딸에게 전화해서 ‘아무 문제 없냐’로 할 만큼 우려가 컸다.  

연극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다. 어떻게 보면 개방적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비개방적이다. 서로 연출가들끼리 상대의 연습실을 가지 않는다.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연습 과정을 알 수 없다. 보편적인 도덕성을 믿을 수 밖에 없다. 

가장 속상한 건 연극계 전체가 한방에 무너졌다는 것이다. 물론 미투로 인해 일련의 자정효과가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취소된 수많은 것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 에너지들이 사라졌다. 블랙리스트에 미투에 정재경 이사장 횡령에 여러 건들로 인해 국가도 엄청난 일을 겪었지만 연극계도 너무 힘들었다.

결국 블랙리스트부터 미투까지 연극계가 정신적인 변혁의 시기를 맞았다고 본다.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나고 당황스럽고 황당한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이것도 변혁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본다. 

박장렬 연출가하면 <이등병의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많은 관심을 받았던 연극이었는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고상만씨의 작품인데 극본 마지막에 엄마들이 겪은 상황을 채록해서 쓴 것이 있었다. 실제로 그분들이 당한 것을 쓴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엄마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만 전한다면 에너지를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엄마들과 이야기하고 워크샵도 하고 배우들과 엄마들 만나고 함께 울었다. 연습하면서 사실 잘 안 우는데 엄마들 이야기들으면서 많이 울었다. 자기 자식이 죽고 노래방 같은 곳을 가본 적이 없다. 삶이 즐거운 것을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다. 병원 냉동실에 십여년간 있는 부모들은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는다. 

충격적인 것은 군대에서 아무 일도 아닌 걸로 하는 의문사를 처리한 과정이 유가족 하나하나가 다 비슷한 것이다. 빨리 장례 치르고, 서류 정리하라고 하고, 화장시키고... 그래놓고 연락이 안 되는 거다. 아들들이 잘못한 것으로 되는 것이다. 국군묘지에도 묻히지 못하고 보상도 없다. 

부대의 상관들이 이를 개인의 잘못으로 덮어버리고 자살이나 사고사로 정해버리는 과정 속에서 어머니들이 철저히 무시되는 과정이 너무 똑같으니 서로 공감하고 눈물바다가 된다.

연습하면서 좋았던 것은 마지막에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큰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불러본 것이 얼마만이냐고 하더라. 아들을 먼저 보낸 죄인이기에 큰소리로 아들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더라는 거다. 집안에서 이름 부르는 것이 서로에게 상처이니까. 아들 이름 부르며 서로 울면서 치유를 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연극을 하냐며 두려워하기도 하고 마음도 많이 무거웠다. 그렇지만 연극을 하면서 행복해지고 밝아지고 생기가 도는 모습을 봤다. 확실히 연극에는 치유의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이 공연이 끝난 후 출연하신 유족분들의 문제가 다 잘 되어서 모두 국군묘지에 묻혔다. 내 기억으로도 어떤 연극 하나가 이렇게 반향을 일으킨 기억이 없다. 연극이 가진 사회적 기능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한 사례인데 그 부분이 잘 안 다루어진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이 있다.

▲ <이등병의 엄마> (사진제공=연극집단 반)

예술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지만 대중성이나 상업성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연극에는 예술적인 것을 위주로 하는 작품도 있고 대중을 위주로 하는 작품이 있는데 내가 있는 ‘연극집단 반’의 작품은 작가주의를 지향하면서 예술을 위한 예술, 더 깊이있고 집요한 작품들을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좋아하지만 어렵다는 반응도 많다. 어렵다는 것은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술은 사유의 기능이 있다고 한다. 공연 끝나고 나서 관객들에게 ‘당신 연극은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

씹고 버리는 껌이 아니라 매실청처럼 담갔다가 필요할 때 우려내는 것이 연극의 다양성이다.  영화도 블록버스터를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유럽 예술영화도 가끔씩 보지 않나. 

전에 한 번 상업적인 연극을 한번 했는데 엄청 망한 적이 있다(웃음). 그 작품 마치고 ‘우리 극단은 내가 좋아하는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하고 있다.

쉽고 재미있는 연극도 있어야하고 잘 이해되지 않고 생각해야하는 연극도 있어야한다. 우리 단체 이름의 ‘반’이 돌이킬 반(反)자다. 사유하는 연극을 하고 싶고 책과 달리 연극은 현장성이 있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하려고 한다. 

<이등병의 엄마>도 물론 좋은 작품이었지만 그 외의 본인의 대표작을 꼽자면

‘블랙리얼리즘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그 중 <신발>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이주노동자도 인간이다’ 라는 것을 주제로 했는데 배우들도 관객들도 힘들어한 기억이 있다.

일반 연극처럼 기승전결이 있는 게 아니라 의식의 흐름을 따라 썼고 설명적이지도 않다.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서사적인 구조도 없기에 스토리에 길들여진 관객들 입장에서는 힘든거다. 힘들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꼭 그걸 맞춰야하나라는 생각을 했고 너무 설명적이면 재미가 없지 않나. 그렇게 공연했다.

사장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주노동자가 신발 공장을 하는데 사장이 그 이주노동자를 버리자 공장에 불을 지른다. 결국 폭삭 망하고 방황하다가 섬에서 신발을 벗고 자살을 하는데 자살하는 순간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의 파편을 풀어서 쓴 작품인데 그러니 어렵지(웃음). 자살한 곳이 섬인지 강인지 불분명하게 보이고 심지어 주인공이 자살한 건지 아닌건지 불분명하게 보였으니(웃음).

우리의 기억은 온전치 않다. 인간은 망각의 주체다. 결국 정신과 육체가 좋아하는 쪽으로 가는 게 인간이다. 인간도 동물이니까 행복을 추구하는데 예술이라는 것은 추하고 더럽고 어두운 곳을 보여주고 왜 추하고 어렵고 어두운지를 비추는 역할을 한다.

자기가 아는 방식대로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에 따라 연기 양식도 서로 다른 것이다. 연극은 자기 삶의 태도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다양성이 존재해야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지는 게 독재 아닌가. 그런 사회가 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닐까 한다. 

연극은 예술적 지향점을 가지고 작업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건강한 거다. 돈이 문제인 집단들이 아니라 정신으로 보상받는 집단들이다. 아직 연극계는 그런 집단이 많다. 가난이 주는 위대한 유산이다. 아직도 돈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분들이 많다. ‘선택한 가난’이다. 

예술은 자유의 세계다. 그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영역이 반드시 있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문화투데이의 역할이 중요하다(웃음).

▲ <집을 떠나며> (사진제공=연극집단 반)

대한민국 연극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서 한다. 예술감독으로서 가장 고민하는 것은 지역 같은 경우는 연극 보는 것이 쉽지 않고 블랙리스트 미투 등으로 연극계가 많이 힘들다. 

그래서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연극제를 하는데 어떻게 국민에게 돌려주고 어떻게 선순환을 시킬 지가 중점이다.  아직 어떻게 할 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사회의 어두운 그늘, 약자를 위한 캠페인이 될 수 있고 헤드카피를 지금 만드는 중이다. 오는 6월 1일에 개막한다. 

많은 분들이 연극을 사랑해줘야 하는 이유는? 

산에 가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절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있다. 교회도 성당도 다 마찬가지다. 예술은 대체로 도시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연극은 관객이 존재해야 한다. 연극이 가지고 있는 도시 속의 사색과 고요가 있다. 

좋은 연극을 시민들에게 맞춤 서비스 할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좋은 연극 한 편을 보게 되면 몇백만원을 쓰는 여행보다 값지다. 도시 속에 살면서 여행을 할 수 없는 이들이 정신적인 여행을 하면서 삶의 에너지를 충족하고 뒤돌아보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은밀하게 나무 한 그루를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열매를 따는 순간 누군가와 나누어 먹고 또 그 사람은 마음 속의 나무를 키울 것이다.  삶이 가고 있는 방향성. 절대적인 시간, 관념 속에서 예술은 잠시 멈출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화초에 물을 주는 느낌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잖나.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예술을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