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태희 분장감독 “배우의 캐릭터 완성을 돕는 것이 분장의 임무”
[인터뷰] 조태희 분장감독 “배우의 캐릭터 완성을 돕는 것이 분장의 임무”
  • 임동현 기자/하채연 인턴기자
  • 승인 2019.02.1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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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화된 고증보다 상상력 극대화시키는 것이 중요, 최종 목표는 ‘분장박물관’”

영화를 보면서 ‘분장’을 제대로 살펴본 적이 있었을까? 어쩌면 우리는 분장을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조선시대니까 수염을 기르고 왕실 여성들은 화려한 화장을 하고 상처나면 피흘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으로 우리는 분장을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영화의 얼굴 창조전>은 그 생각이 결국 ‘무지의 소산’임을 느끼게하는 전시다. 분장은 물론 소품 하나하나에도 분장감독과 스탭의 정성이 묻어있는 모습을 보면 이제 영화를 볼 때 분장과 소품에도 시선을 가져야한다는,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도 뭔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영화의 얼굴’을 보여준 이가 조태희 분장감독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역린>, <사도>, <창궐>, <남한산성>, <안시성> 등을 통해 배우들의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낸 조태희 분장감독이 전하는 영화 이야기에 빠져보자.

▲ 조태희 분장감독

이번 전시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분장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형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디테일하게 풀어서 보여주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장을 화장 정도로 생각하고 비녀 같은 것도 단순한 소품으로 아는 분들이 많은데 수염이나 상처 분장, 모든 장식 등이 다 분장사와 연관이 되어 있다. 비녀도 다 디자인을 하고 수정을 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에서 분장의 역할은 무엇일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렸을 때는 분장이 많이 보여지고 티가 많이 났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고 영화에서 잘리거나 그냥 지나쳐버리게 되면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차츰 배우의 캐릭터를 돕는 조력자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됐다.

내 역할은 분장이 배우들의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는 것이다. 절대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조연이자 보조라고 생각하고 있다. 캐릭터 완성을 도와주고 잘 투영되게 협력하는 것이 분장의 임무라고 본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배우의 연기가 생각나야지 화려한 의상이나 복식이 생각나면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극은 주로 고증에 많이 신경을 쓰는데 상상을 덧붙인 점이 주목됐다. 자칫 고증과 상상의 충돌이 우려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조선 시대는 고증이 많이 나와있고 사료도 자료도 많다. 박물관만 가도 나온 것이 너무 많다. 고증을 따라가면 모든 배우들의 스타일이 다 똑같아질 것이다. 어떤 영화든 마치 유니폼을 입은 것처럼 똑같이 나오는데 이게 영화로서 타당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더라.

영화라는 것이 팩트와 상상이 섞인 것인데 고증으로만 가서 너무 재미없게하기보다는 상상으로 고증을 섞어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고증에 가장 충실했던 작품은 <사도>였다. 영조의 어진이 정확히 남아있기에 영조의 수염 색깔이나 모양 등을 똑같이 하려 했다. 반면 <광해, 왕이 된 남자>나 <역린>의 경우는 상상을 많이 덧붙인 작품이다. 

<창궐>의 경우는 허구의 이야기잖나. 너무 현대적인 표현보다는 옛날 장식을 유지하되 고증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으로 조선과 청나라를 섞은 표현을 하기도 했다.

충돌은 계속 있다. 단체나 협회에서 전화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다큐가 아닌 이상 영화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주는 것이 고증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 <사도> 속 영조(송강호 분)의 얼굴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중전(한효주 분) 얼굴을 거의 ‘민낯’으로 표현했는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가장 보기 힘들었던 게 풀메이크업이었다. 풀메이크업에 서클랜즈까지 끼고, 그게 항상 불편했는데 영화 속 중전은 오빠가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혀 있고 폐위 직전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화려하게 풀메이크업을 하는 것이 맞나 했다. 더 청초하고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메이크업을 많이 빼기로 하고 배우, 감독과 협의해서 결정했다.

<남한산성>에서 배우들의 수염은 물론 수염에 붙은 서리까지 계산한 것도 인상적이다

배우들 수염이 윗입술을 다 덮을 정도로 길다. 보통 사극에서는 다듬어서 나오는데 고립무원의 상황이고 탈출할 수 없고 전쟁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인데 수염을 자르지 않고 자랐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영화 촬영이라는 게 오늘 찍은 장면을 당장 다음날 찍는 것이 아니라 며칠 후에 찍기도 하고 20일 후에 찍는 일도 많다. 서리 같은 경우는 계산을 하지 않으면 장면장면마다 틀리게 된다. 추위의 강도 등을 체크하고 이를 맞추어야한다. 모든 것을 그 전 상황과 똑같이 만들어야하는 것이 참 어렵다.

<남한산성> 속 김상헌(김윤석 분)과 최명길(이병헌 분)의 ‘관자’(망건에 달아 당줄을 걸어넘기는 구실을 하는 작은 고리)에 의미를 부여했던데

<남한산성>은 성격 부여를 많이 했다. 김상헌은 청나라에 무릎꿇느니 차라리 전쟁을 하자닌 강경한 스타일이고 최명길은 항복을 하더라도 전쟁을 피해 백성을 살리자는 스타일이다.김상헌의 관자는 전통모양이면서 크게 만들어 위협적으로 보이게 했고 최명길의 관자는 3분의 1크기로 작게 했다. 센 사람과 온건한 사람의 모습을 관자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 <사도> 속 사도세자(유아인 분)의 피묻은 상투

영화 속에서 불과 몇십초밖에 나오지 않는 비녀를 만들기 위해 두 달여를 작업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어렵게 작업하면서 막상 화면에 나오지 않거나 관객들이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예전에 선별해서 한 적이 있는데 의미가 없더라. 힘들여서 한 것은 편집되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힘을 빼고 한 것은 디테일하게 오래 나온 경우가 있었고. 그래서 비중을 생각하지 않고 똑같이 진행을 하고 있다. 

영화의 이야기에 빠지다보면 잘 안보일 수도 있는데 각자 영화를 보는 느낌이 있기에 충분히 표현이 됐다고 생각한다. 스크린에서는 실제보다 더 크게 나오잖나. 그 효과도 있다.

사극 외에도 <형>, <완벽한 타인> 등 현대물도 작업했는데 현대물이 더 쉽지 않을까?

현대물이 더 어려운 것 같다.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가 있는데 새로 들어가는 작품이 그 이미지와 겹치면 안 되잖나. 머리를 아무리 짜내도 전 작품과 비슷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 부분을 풀어가는 과정이 힘들다.

예를 들어 <특별시민>에서 최민식 선배님이 서울시장으로 출연하는데 최민식 선배의 작품들이 상당히 많지 않나. 그러면 헤어스타일 같은 것이 중첩되면 안 되는 거다. 사람들이 영화 속 서울시장을 보고 <신세계>나 <범죄와의 전쟁>이 떠오르면 절대 안 된다. 비슷비슷하지만 차별화를 줘야하다는 점이 더 어렵다.

노출이 심한 영화는 안 하려 한다. 후배가 그런 영화를 작업한 적이 있는데 정말 꿈에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고 하더라. 거의 하루를 계속 봐야하고 수정해야하고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다시는 그런 영화 안 한다’고 했고 나도 그 힘든 것을 알기에 노출 심한 영화는 절대 안 한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알겠지만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가 하나도 없다(웃음). 

▲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광해(이병헌 분)가 쓴 상투관

전시물을 소개하는 글들도 참 재미있었다. 특히 현빈, 장동건을 칭찬한 글이 눈에 띄는데(웃음)

현빈씨는 영화만 세 작품을 같이 했는데 지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40분,50분 전에 먼저 오기도 하고 스탠바이하기도 전에 차에서 먼저 기다리기도 했다.  사실 늦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습관에서 나오는 것이잖나. 그것이 굉장히 멋있었다.

<창궐>을 같이 한 장동건 선배님은 현장이 거칠고 참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한 번도 인상을 쓴 적이 없었다. 배우를 떠나 인간적인 부분에서 본받고 싶을 정도였다. 그건 나만 느낀 것이 아니라 모든 스탭들이 느꼈을 것이다.

때로는 배우들이 아이디어를 내기도 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이병헌씨가 눈썹 분장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 ‘광대 역할을 할 때는 눈썹 방향이 내려오게, 임금 역할을 할 때는 눈썹 방향이 올라오게 해보자’고 했는데 정말 미세한 차이인데도 분명히 달라보였다.

가장 공을 들인 작품이 있다면?

만나는 분마다 꼭 이 질문을 하시는데(웃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광해, 왕이 된 남자>고 노력을 많이 들인 작품은 <안시성>이다. 정말 추운 날 찍었는데 공을 많이 들였다. 개봉 무렵 ‘투구 논란’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전의 투구를 써보니 얼굴이 가려지고 액션을 하기가 힘들었다. 스타일리쉬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만든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작업을 하는데 참여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거나 혹평을 받으면 많이 섭섭할 것 같다

<역린> 같은 경우는 300만 정도가 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름대로는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물론 시선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지만 그래도 잘 봐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데 스코어가 잘 안나오면 좀 아쉽다. 스코어 때문에 깎이는 것이 아쉽다. 내가 참여한 영화들은 다 똑같다.

분장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현장에 왔다. 같이 배우던 사람들은 외국 유학도 가고 학교로 간 친구들도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배워서 바로 현장으로 갔다. 그런데 지금 남아있는 이가 나밖에 없다. 다들 직업에서 떨어져 나가고 제 선배들도 최근까지 하다가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갈등을 엄청 많이했었는데 현장에 바로 들어간 것이 독이 아니라 약이었다고 생각한다. 

매력을 가진 것은 TV에서 사극 분장하는 모습을 ENG 카메라로 찍은 것을 봤는데 50대, 60대 선생님들이 돋보기를 끼시고 분장을 하시는 모습이 멋있고 반했다. 남자가 메이크업을 한다는 것이 그 당시엔 생소했는데 그 모습에 반했고 장인의 모습이 느껴졌다. 그 이후로 다른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도 분장으로 했고 다른 작업을 한 적도 없다. 

맨 처음 한 작품은 무엇이었는지?

2주 정도 실습으로 참여한 작품이 <춘향뎐>이었고 정식으로 시작한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다. <춘향뎐>에 참여할 때 조승우씨를 만났는데 당시 조승우씨도 데뷔작이었고 나도 첫 작업이었다. 내게 말 걸어주고 악수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조승우씨는 기억할 지 모르겠지만(웃음). 

작품을 같이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만나면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기는 하다. 조승우씨야 이후에 영화, 뮤지컬에서 계속 활동하다보니 기억이 잊혀졌겠지만 내게는 그 만남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광한루 올라가는 계단에서.

▲ <역린> 속 정조(현빈 분)의 비녀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영화의 추억이 떠오를 것이고 그렇지 않으셨던 분들도 ‘저 장면을 저렇게 만들었구나’라는 뒷이야기까지 함께 보시면 재미있는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분장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을 했다. 왕도 있고 망나니도 있고(웃음) 다양한 캐릭터가 있어 골라서 할 수 있다. 전시가 분장 전시이기에 분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보여줘야한다고 봤고 반응도 좋게 나오고 있다.

자신이 무엇으로 불려졌으면 좋겠는가? 분장가? 예술가?

이 질문은 정말 처음 들어본다(웃음). 나는 사업가였으면 좋겠다. 내가 사업가가 되야 후배들이 나로 인해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다. 내가 예술가로 남으면 모두 굶어죽을 것 같다. 내가 사업가가 되어야 분장도 더 여유롭게 할 수 있고 그래야 더 폭발적인 예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분장하는 사람들이 다 프리랜서다. 영화 시작하면 일을 시작하다가 영화 작업 끝나면 또 일을 찾아야한다. 내가 하는 ‘하늘분장’은 모든 이들이 정직원이다. 그런 부분이 손해일 수도 있지만 더 잘되는 비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작업 중인 작품은?

김래원씨, 원진아씨가 출연하는 <롱리브더킹>이 크랭크업했고 설경구씨, 조진웅씨가 나오는 <퍼펙트맨> 작업도 마쳤다. 그리고 지금은 <기방도령>이라고 준호씨와 정소민씨가 출연하는 영화 작업을 하고 있고 안성기 선생님이 출연하는 <종이꽃>이라는 영화를 시작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분장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박물관 안에 회사도 같이 있고 가발 회사, 장신구 회사가 같이 있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꿈이다. 그 첫발을 지금 시작한 것이고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최종 목표이기에 이번 전시 준비한 것처럼 잘 준비해서 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