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립국악원 무용단 갈등,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다
[단독] 국립국악원 무용단 갈등,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다
  • 이은영 기자/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8.31 11: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대위-예술감독 대행 의견 팽팽히 맞서, ‘도제식 교육’의 문제 지적

국립국악원 무용단원들이 전 예술감독 권한대행과 일부 보직단원들이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일부 단원들의 악의적 출연배제 등 갑질과 외모 및 신체에 대한 인격모독을 자행했다면서 지난 8월 8일 국립국악원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조치를 촉구하는 '국립국악원무용단 내 위계 간 갑질 및 인권탄압 사태의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단원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설치하고 1인시위 및 집회를 열고 있다.

비대위는 "국악원 무용단 최모 전 권한대행과 일부 보직단원이 지위를 악용해 일부 단원들의 출연배제 등을 비롯한 갑질과 외모 및 신체에 대한 인격모독 행위가 일상화됐다"고 폭로하면서 피해사례와 의견들을 국립국악원장과 행정실에 여러 차례 전하고 진상조사를 촉구했지만 아무런 공식조치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은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를 통해 단독 보도된 뒤 타 언론에 계속 소개됐다.

▲ '국립국악원무용단 내 위계 간 갑질 및 인권탄압 사태의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단원 비상대책위원회‘가 예악당 앞에서 전 권한대행 최모씨와 보직단원의 횡포를 시정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국립국악원무용단 내 위계 간 갑질 및 인권탄압 사태의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단원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

논란이 불거지자 국립국악원은 언어폭력과 갑질에 대해 "문제제기가 나온 뒤 6~7월에 걸쳐 단원과의 대화 및 의견수렴을 통해 1차 사실관계를 확인했지만 단원들의 피해 주장과 지도부의 해명 내용이 서로 다른 부분이 있어, 문체부 감사담당관실에서 조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국악원은 관련자 처벌과 재발방지대책 수립 요구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조사 결과가 나온 후 관련 규정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면서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연주단 고충처리함 설치, 원장과의 대화방 개설, 원장과 연주단원과의 소통 정례화 등 조치를 취했으며, 향후 조사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추가로 개선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단원들이 진상조사 요구를 했음에도 조사를 시작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정한 조사를 위해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조사를 추진했지만 조사단 구성안에 대해 단원들과 합의가 되지 않아 지연됐다"면서 "문체부 감사담당관실에서 지난 14일부터 특별감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향후 결과가 나오면 규정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욕적 언행, 인신공격” vs “자기관리 조언을 ‘막말’로 비약 주장” 

비대위가 제기한 문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복무 전반에 대한 갑질 행태,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공연 출연명단의 결정권한을 이용한 유사 징계 행위, 단원의 외부활동 부당 제재, 총무단의 불공정한 근무행태와 소통의 부재다. 

비대위에 따르면, 무용단 내에서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모욕적 언행과 단원들의 외모에 대한 인신공격, 임산부에 대한 비상식적 발언, 타 단원과 비교하는 모욕적 언사. 연가 및 병가 사용시 연가 이유를 캐묻는 등의 사생활 침해가 있어왔다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00보다 뚱뚱하다. 임신한 것 아니냐?", "(머리카락 색깔을 지적하며) 노란 000로 공연을 하느냐?" 등이 비대위가 제시한 예다.

또 예술감독 대행과 감정적 갈등을 겪은 일부 단원들은 정확한 사유를 통보받지 못한 채 장기간 공연에서 배제되는 등 사적 감정에 치우친 인사조치가 횡행했으며 역시 사적 감정으로 단원들의 외부활동을 제재했다면서 "단원들의 의견을 고려한 총무직의 선임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비대위는 "현 지도부와 국악원 사무실 사람들, 무용단 외부의 사람들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본인들이 저지른 언어폭력과 권력남용으로 단원들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외면한 채 권력을 갖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몇몇 단원들이 선동해 지도부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한다고 뜻을 축소하고 왜곡해서 해석하는 것이 실망스럽고 가슴이 아프다"면서 "우리의 이 일은 단순히 지도부를 끌어내리거나 감독을 선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관행을 철폐하고 더 이상의 문화예술계의 지위를 이용한 괴롭힘이 사라지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 예술감독 대행은 "단원들과 한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고 서로 허물없이 대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단원들에게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공연에 임하도록 자기관리에 대한 조언을 해준 것인데 그것을 '막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9년 전 일까지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자존심을 꺾었고 공연에서 배제될까 두렵다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을 왜곡해 공격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 예술감독 대행은 "무용단 특성상 임신 사실을 알리면 휴직에 바로 들어가는 관례가 있고 본인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임신 사실을 물어보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몸 관리를 한 선배의 예를 들어 본을 받으라고 조곤조곤 말한 것인데 그것이 마치 상대방의 몸매와 비교하고 임신을 거론하는, 자존심 상하게 하는 막말로 바뀌었고 더 나아가 '성희롱'이라는 말로 부풀려졌다."고 말했다.

언론, ‘막말 성희롱 프레임으로 몰아가’

그러면서 최 예술감독 대행은 "단원들을 가르치면서 관행적인 지도 방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잘되게 하려고 한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은 내 불찰이지만 한 마디, 한 단어를 가지고 막말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언론은 '왜 그런 말이 나왔는가'를 파헤치기보다는 '이런 막말을 했다'는 내용에 치중했고 심지어 한 매체는 '성희롱'까지 했다고 보도했다. 진실을 알리기보다 선정적인 내용에 치중하고 있고 '막말 성희롱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면서 일부 언론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최 예술감독 대행은 "2017년부터 공연 일정이 늘어나 개개인의 연차나 병가를 챙겨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난해처럼 일괄적으로 휴가를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개인별로 필요한 시기에 연가나 병가를 챙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추석 연휴에도 공연이 있는데 그 기간에 여행이나 결혼식 참석 등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연가나 병가를 내는 이들이 있었다. 공연이 있는데 어떻게 휴가를 줄 수 있는가? 그래서 못 준 것인데 그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고 무조건 '예술감독이 연가를 막았고 연가 승인을 한다면서 사생활을 침해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말도 전했다.

또한 출연 배제 문제에 대해서도 "절대 사적 감정으로 하지 않았고 배분을 위해 일부러 표까지 만들어 출연 횟수를 체크하고 있다. 단원에게 맞는, 그 단원이 해야하는 역할과 공연을 맡긴 건데 자신이 하고 싶은 공연을 하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출연을 배제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심지어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여론에 편승하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은 팽팽하다. 서로 자신들의 생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문체부, 외부 전문가 참여 조사위원회 구성

비대위는 지난 18일 문체부의 특별조사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대위는 "해당 사안이 피해자 보호가 우선인 인권과 성희롱에 대한 피해사례임에도 그에 준하는 조사절차 형식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으며 피해사례의 위중함을 볼 때 피해자 보호의 기본적 조치 하에 전문가와 전문적 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기에 상부기관의 일반적인 감사관 업무의 효율성만을 고려한 내부감사식 조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또 "이번 조사의 성격과 절차에 대한 어떠한 고지도 없음을 문제 삼으며 피해자의 업무로 인한 피로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등 피해자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현 조사 형태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외부 전문가(인권, 성, 노무분야)를 포함한 진상조사위원회가 아닌 상급기관 감사담당관 1인의 급조된 조사 및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국립국악원무용단 내 위계 간 갑질 및 인권탄압 사태의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단원 비상대책위원회‘가 예악당 앞에서 전 권한대행 최모씨와 보직단원의 횡포를 시정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국립국악원무용단 내 위계 간 갑질 및 인권탄압 사태의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단원 비상대책위원회‘ 페이스북)

이후 문체부는 지난 25일 비대위의 요구대로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조사위를 구성하겠다고 밝혔고 비대위는 이를 받아들여 조사에 임하기로 했다. 비대위는 "피해사실(공연배제)은 조사를 통해 밝힐 예정"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국립국악원의 태도에 대한 양측의 입장은 달랐다. 비대위는 "조사를 하면서 이 문제를 성희롱과 인권 침해 관련 사안으로 전혀 보지 않았고 오히려 '그럴 수 있는 일 아니냐'라는 질문을 피해단원들에게 되풀이했으며 피해자의 신상이 포함된 진술서를 가해자에게 노출시켜 2차 피해를 야기하는 신중하지 못한 행태를 보였다"고 밝히면서 "국악원이 비대위의 의견을 전혀 들어주지 않으면서 '합의가 되지 않아 지연되고 있다'는 식으로 조사를 피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 예술감독 대행은 “국립국악원이 공정하게 조사를 하고 공정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국악원이 내보낸 보도자료를 보면 비대위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였다” 면서 “이 사건 이후 국악원에서 연락이 오지 않고 우리를 피하려는 모습이 있다.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어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국립국악원 관계자는 “맨 처음 사건이 밝혀지고 나서 중재를 하려고 했지만 양측의 입장차가 너무나 커서 중재를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문체부의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한다.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 여러 가지 사안들을 처리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도제식 교육’의 문제, 수면 위로 떠오르다

최 예술감독 대행은 단원들을 지도하면서 조언과 지적을 한 것이었지만, 이를 들은 단원들은 이 때문에 인격적인 모욕과 함께 정신적인 고통을 당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예술지도의 관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 예술감독 대행도 인정한 대로 도제식 교육에 의한 폐해가 이번 사건을 통해 수면 위로 등장하게 된 셈이다. 

흔히 ‘예술은 고통스러운 것’이라며 과중한 연습과 독설을 교육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넘어가려는 그간의 경향, 그리고 이를 소통으로 해결하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넘겨짚는 일련의 상황들이 이번 사건을 만들어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무용계에서 관행으로 내려오고 있는 문제를 놓고 단원들이 집단 활동을 하는 것을 두고 ‘자신들이 원하는 감독을 선임하기 위한 것’, 혹은 ‘몇몇 선배 단원들이 자신들의 선생들을 대리한 선동’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밝힌대로 비대위는 “지도부를 끌어내리거나 감독을 선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관행을 철폐하고 더 이상의 문화예술계의 지위를 이용한 괴롭힘이 사라지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상황은 무용계, 나아가서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지위를 이용한 전횡을 막아야한다면서 비대위에 힘을 실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다. 이것은 ‘갑질’ '미투‘ 등 사회의 여러 병폐들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과 더불어 그만큼 문화예술계의 도제 교육이 큰 문제점이라고 보는 인식이 맞물리면서 벌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양측의 말은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지 실제 상황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기에 아직은 조심스럽게 살펴봐야할 시점이다. 문체부의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양쪽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로 인한 파장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 국립국악원 민속국악원 무용단

국립국악원, 지금 문제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라

국립국악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 공연 문화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로 삼겠다. 국립국악원 공연 연습과 공연 과정에 잘못된 관행이나 비민주적 요소를 걷어내어 단원과 지도부가 상호 신뢰를 쌓고 국민들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서비스하는 환경을 만들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국립국악원은 그동안 블랙리스트 사태 등 각종 문제로 얼룩져 있었으며 최 예술감독 대행이 29개월 동안 대행을 해야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새로운 원장이 부임하고 이제 새로 시작하려할 때 이 사건이 불거졌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이것이 도리어 국립국악원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잘못된 관행, 비민주적 요소를 걷어내겠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국립국악원 내의 문제는 작든 크든 국립국악원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른 처벌이나 기타 결정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국립국악원에 필요한 것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앞으로 이런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단원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단원들과 지도부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잘못된 교육 방법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등을 생각하고 실천해야한다. 그래서 ‘기회’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제2, 제3의 무용단 사건은 물론이고 국립국악원의 이미지 또한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국립국악원을 만들 기회가 되어야할 것이다.